들녘에 봄기운이 아련했다. 얼었던 산천이 풀리고 사람들의 몸도 풀리고 있었다. 몸이 풀리기를 기다려 충청도의 안병찬이 가장 먼저 의병의 깃발을 세웠다. 송수익은 감시를 피해 향교 뒤뜰에서 임병서를 만났다. “충청도 의병이 왜놈 군대와 접전하다 패했다는 소식입니다.” 임병서의 얼굴이 침통했다. “패했다면…… 의병들이 전멸했다는 건가요?” 송수익은 엄습해 오는 절망감을 떠밀어 내며 물었다.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워낙 무기에서 비교가 안 되니…….” “제 생각으로는 무기도 문제인 데다 이쪽의 준비 부족, 전투에 능한 왜군을 상대하는 병법의 미숙이 패인이 아닌가 합니다.” 송수익의 지적에 임병서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을 앞으로 교훈으로 삼아야겠군요.” 임병서는 주저 없이 송수익의 판단에 수긍했다. 그런 임병서의 도량에 송수익은 새삼 신뢰를 느꼈다.
청년 시절에 읽은 『아리랑』이 좀 길다 싶어 딸아이에게 추천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책장에서 꺼내 읽기 시작하더니 밤새는 줄 몰랐다. 열두 권을 읽기에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길어도 자꾸만 읽게 돼요.” 하던 딸아이의 흥분된 표정이 떠오른다. 이 책 『아리랑 청소년판』이었다면 좀 더 일찍 읽어 보라 권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출간되어 많은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아리랑』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매우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