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 음식 중에서 딤섬은 단연 최고로 손꼽힌다. 따라서 홍콩여행에서 딤섬을 맛보지 않는 것은 홍콩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스파게티나 피자를 빼놓는 것이나 프랑스 여행에서 와인을 빼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덧붙여 홍콩 사람들은 딤섬 맛보는 것을 그저 가볍게 음식을 먹는 수준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홍콩은 세계 각국의 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미의 천국'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딤섬은 홍콩 음식의 지표이자, 홍콩에서 경험헐 수 있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이다. 세계의 다양한 스낵 중에서도 최고의 것으로 일컬어지는 딤섬은 단지 스낵으로서뿐만이 아니라 광둥요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딤섬은 아침이나 점심 사이, 혹은 점심과 저녁 사이에 먹을수 있도록 작고 정교하게 갖가지 종류로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최고의 스낵이다.
딤섬은 '点心', 즉 '마음에 닿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벼운 스낵을 뜻한다. 아마 중국사람들 특유의 지헤에 의해 사람의 마음에 닿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미각을 만족시키는 음식을 통해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딤섬은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중국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딤섬을 먹는 행위를 보통 얌차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옮기면 '차를 마신다'는 뜻으로 딤섬과 함께 항상 차가 곁들여져 나온다. 그러나 딤섬은 실제로 식사를 하는 동안 차를 마시는 중국의 전통과는 조금 다르다. 그보다는 차를 마시며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사업 침 사회적 관계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논의하든가 가족의 대소사들으 이야기하는 동안 무엇인가를 곁들여 먹을 필요에 따라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식사를 할때 언제나 여럿이 함께 먹는다. 즉 식사를 한다는 행위는 그저 음식을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하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거나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딤섬을 먹는다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혼자 딤섬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럴 경우 다양한 딤섬을 맛볼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디멈의 종류가 혼자서 맛보기에는 며칠이 걸릴 만큼 대단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딤섬은 보통 작은 대나무 바구니 속에 쪄서 나오거나 자그마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그리고 각 바구니나 접시에는 같은 종류의 딤섬이 셋 혹은 네 개 정도씩 담겨 있다. 즉 네 사람 정도가 딤섬을 먹는 데 가장 적절한 숫자인 셈이다.
--- pp.129~130
마카오 알기
마카오는 아시아에 남아 있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유일한 유럽의 식민지였다. 1999년 12월 20일 0시에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동서 문화가 뒤섞인 흔적은 계속하여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마카오 뒷거리에는 자갈을 깐 보도라든가, 바로크풍의 교회, 포르투갈 요새 그리고 이국풍의 거리 이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반면 중국풍의 사원과 식민지풍의 빌라가 공존하고 있고, 많은 유럽인 어부들과 군인들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또 곳곳에서 카지노나 디스코테크, 별 다섯개 짜리의 고급호텔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한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인 도박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여행자들로서 하가롭고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카오를 찾는다. 마카오는 홍콩으로부터 6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각각의 역사적 특징으로 인해 300여 년간 완전히 다른 발전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름의 유래
'아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신의 전설에서 유래된 '마카오'라는 이름은 16세기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붙여졌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던 정크선이 갑자기 퐁풍우를 만났다. 광란하는 바다에서 배가 뒤집힐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한 여인이 일어나 바다를 향해 '폭풍아 멎어라' 라고 명령을 하자 이상하게도 폭풍우가 즉시 가라앉고 바다가 잠잠해져 배가 무사히 귀항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은 배에서 내린 후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빛과 향기를 내뿜으며 승천했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이 언덕 기슭에 마각묘라는 절을 세워 이여인을 어부들의 수호신(아마)으로 모셨고, 지금도 바라 포인트에는 아마 사원이 있어 사람들이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 포르투갈의 선원들이 상륙해서 그곳 사람들에게 지명을 물어보자 '아마가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에 이르러 '마카오'가 되었다. 즉 마카오라는 도시의 이름은 '신의 도시'라는 뜻인 셈이다.
--- p.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