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9월 7일 함남에서 고원식(高元植)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956년 3월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1958년 3월에 수료하고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가 되었다. 대학 재학 시 손경하, 하연승, 김일곤, 홍기종, 장관진 등과 함께 동인 활동을 활발히 하여 ≪신작품≫, ≪시조≫, ≪시 연구≫, ≪부산 문학≫ 등을 펴냈다. 1957년에는 김재섭과 함께 2인 공저 ≪초극≫을 간행하였고, 그해 ≪문학예술≫에 평론 <시인의 역설」중에서를 6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1958년 4월 19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남긴 유고 <시적 상상력」중에서는 ≪현대문학≫에 연재되었고, 유고 평론집 ≪여백의 존재성≫이 1990년에 선을 보였으며, ≪고석규 유고 전집≫(5권)이 1993년과 2012년에 각각 발간되었다.
편자 : 남송우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평단에 나왔으며, 평론집 ≪비평의 자리 만들기≫, ≪지금 이곳의 비평≫ 등이 있으며, 현재는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나는 나의 여백을 한동안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절박한 시간을 극복하는 나의 안정이라 할 것 같으면 나는 나의 불투명한 여백과 부재의 사고에서 새로운 투명과 새로운 존재를 다시 발견할 것이 아닙니까. ---「여백의 존재성」중에서
현대란 시의 메타포아 속에 압축되며 존재가 메타몰포오즈하는 전장이며, 다시 정신의 메타피직한 초월의 시대라는 것을 어찌 부인할까. ‘상상’과 ‘의미’와 ‘상상’과 그리고 또 ‘신화’의 곁에서 비유는 실존의 기를 세우는 언어의 재건이 되라. 눈감은 ‘방법의 직인’이여! 다시 ‘비유의 직인’이여! 꽃이며 나무며 인정이며 하는 전율의 살창에서 시방 그대의 소리 없는 울음을 느껴라. 그러나 “그것은 정신일 것이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정신일 것이다. 우리가 타일러도 묵묵하는, 아니 들리는 것이란 벌써 인간의 말소리가 아니다. 그는 우리들의 종이 아니라 주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