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12/06 허은순(purpleiris@channeli.net)
이 그림책은 우선 어른들과 아이들이 보는 시각이 좀 다른 책입니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죠. 아이들 그림책에는 대부분 알아보기 쉽고 예쁜 그림들이 나오는데, 이 '뽀끼뽀끼 숲의 도깨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도깨비는 뿔이 없다고 하는데, 저도 전공이 도깨비가 아니라서 더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도깨비들은 또 전혀 딴판인 모습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도깨비'도 아니고 그냥 '꼬마'와 '덩찌'들이었죠. 아주 기괴하고 장난기가 가득해 보입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이상한 모양들을 하고 있는데,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합체도 잘 하는군요.
더욱이 이 그림책은 싫어하는 어른들도 적지 않고, 저도 이런 그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대단히 좋아하더란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상한 이름들을 보면, 끔따쿠리, 깡뚱불이, 콩발깨비, 뚤비뚤비, 해롱다리, 무뚝띠기, 돈세구리, 심퉁가리등....하나같이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이름들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서로들 합체를 하게되면 이름까지 합체가 되는 바람에 웬만큼 부드러운 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입이 돌아갈 지경입니다. 그런데 읽어주는 사람의 입이 괴로울수록 아이들은 즐거워하였습니다. 이유가 뭘까? 뭐가 그리 재미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포켓몬'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이상합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이름들을 줄줄이 노래로 부르고 다녀요. 아예 '포켓몬 백과사전'도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뭔가 어른들 보기에는 이상한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들이 이상하긴 하지만 박자에 맞춰 부르면 재미난 말 잇기 게임같이 되는데다가, 합체까지 하게 되면 그 이상한 재미가 더해지죠. 어쨌든 이 그림책은 특이하고 개성 있는 그림책이었습니다.
꼬마들에게 심심한 것에 대해 덩찌들이 설명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아이들이 매우 좋아하는데요. 특히 '바닥에 머리 처박고 잠이나 자는 거지.' '심심한건 말이지. 이렇게 벽이나 박박 긁는 거야.' 하는 부분에 가면 아이들은 웃다못해 데굴데굴 구릅니다. 전 별로 안 재밌는데 그런 애들이 더 웃겼습니다. 이 그림책을 처음 읽던 날은 혀가 얼얼하도록 '확불덤벙싹이쓸까띠기불이... 쓸까쓸까, 띠기불이, 띠기띠기.....'를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이 딱 한군데 있었는데, 그것은 책 맨 뒷장에 있는 '만든 사람들'을 소개하는 부분이었습니다.
'1991년부터 도깨비를 이상하게 그리기 시작한 사람 임선영
1995년 8월, 그 그림에 이야기를 달기 시작한 사람 이호백
1996년 3월, 그 이야기에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 김현진
1996년 9월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정상적인 글로 다듬은 사람 채인선
1996년 12월부터 편집이 곤란한 글과 그림을 디자인한 사람 최남주
1997년 4월부터 이 책의 전국적인 보급을 위해 뛰는 사람 조광현'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여태까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소개였습니다. 그래서 전 이 그림책에는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재미마주에게 직접 물어 보았습니다. 역시 사연은 있었습니다. 원래 그림은 더 복잡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배경을 지금과 같이 처리했답니다. 글쓴이가 어느 지루한 오후 전철을 탔는데 거기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조용한 전철 안이 한 유치원생들이 단체로 타는 바람에 뒤죽박죽 시끌벅적이 되어 버려서, '지루했던 어른들의 뭉기뭉기 숲이 갑자기 아이들의 뽀끼뽀끼 숲으로' 라는 그림책 설정이 되었다는 군요. 그리고 꼬마들과 덩찌들의 이름은 여러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더 이름을 어렵게 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하시길 정말 다행이라고 안심을 했답니다. 만약.... 지금의 이름에서 더 복잡했더라면, 아마도 저야말로 '심퉁끔득득따딱해롱퉁쿠리찌기다리가리'가 되어 해롱해롱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