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바닷가에 세워진 105층짜리 리조트의 중간 부분이 꺾여 있었다. 꺾여 들어간 부분은 흉측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느새 그 끔찍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에 나는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 --- p.13쪽)
“너만 글 쓰냐? 나도 시인이다! 작가새끼가 소설이나 쓸 것이지 왜 남의 일에 나서서 지랄이야? 소설도 좆같이 쓰는 것이 말하는 것은 더 형편없잖아! 앞으로 소설가 행세하고 다니지 마! 소설가 행세하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더러는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 더 악랄했다. “늙은 놈, 그러다가 죽겠다. 그만하고 옷을 벗기라고. 이런 놈은 모욕을 줘야 한다고. 평생 씻지 못할 모욕을!” “살날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들은 나한테 가하던 폭행을 그만두고 그 대신 내 옷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팬티까지 찢을 수는 없었던지 그것만은 남겨둔 채 바닷가로 끌고 나갔다. --- p.20~21
“언니, 남자들은 다 개새끼들이에요. 사기꾼에 위선자들이에요.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했지 다 도둑놈들이에요. 난 지금부터 남자들을 죽일 거예요. 한 놈 한 놈 죽일 거예요.” 그녀는 젓가락을 움켜잡더니 그것으로 탁자를 콱 찍었다. --- p.37
그녀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면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 꼭 끼는 청바지에 가려진 그녀의 엉덩이는 터질 듯 팽팽했고, 좌우로 씰룩거리는 그 모습은 너무도 육감적이어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선생님은 복도 많으십니다. 저런 매력적인 여자가 팬이라니.” “그것도 복이라고 해야 하나. 난 괴로워요.” 늙은 작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 p.45
소녀가 나타나 밑도 끝도 없이 죽은 아기 시신을 찾아달라고 한 것은 한 시간쯤 전이었다. 자기 아기 시신을 비닐봉지에 넣어가지고 가다가 모르고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렸다는 것이었다. 어린 소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고, 더구나 죽은 아기 시신을 모르고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렸다는 것은 더더욱 요상한 말이었다. --- p.238
나는 어른들이 싫다. 거칠고 위압적이고 무섭다. 그리고 목소리가 너무 크다. 어른들은 모든 것을 부수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누구니 누구니 해도 우리 아버지다. 술 취해 들어와 욕설을 해대며 엄마와 우리 남매를 때리고 닥치는 대로 던지고 부술 때 그 무서움은 말로 못한다. 한 마디라도 말대꾸하면 더 날뛰기 때문에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 아빠가 때리기 시작하면 엄마는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린다. 얼굴을 다칠까 봐 밑으로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등을 둥그렇게 하고 엎드린다. 그 모습이 마치 거북이 같다. --- p.220~221
“우리는 우리 조선인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을 찾아내 처벌하고 있는데, 너한테는 사형선고가 내려졌어.” 그녀는 야구방망이가 머리 위로 높이 쳐들려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막기 위해 두 손을 쳐들려고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닥터 킴은 딱 한 번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그것이 그녀의 뒤통수에 부딪쳤을 때 딱 하는 울림이 한 번 있었고, 그녀는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는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긴 다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녀를 욕실로 끌고 갔다. 잠시 후 욕실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그의 손에는 전기톱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