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놀자 대표 그는 자기 스스로 ‘노력 진행형인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밑바닥 0에서 시작했지만 땀 한 방울마다 한 걸음씩 정직하게 걸어서 인생을 풍요롭게 일구어가고 있다. 그의 노력이 진행형인 것처럼 그의 도전 역시 진행형이다. 그의 좌우명은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이다. 그 좌우명대로 그는 실패할 때마다 다시 시작하기를 멈추지 않아 실패를 디딤돌로 만들었고 성공할 때마다 그 성공을 잊고 다시 더 큰 성공을 향해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삶 전체로 누구나 자신의 주어진 운명을 개척할 수 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재가하시며 분가해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어린 시절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농사일을 돕느라 제대로 공부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집중관리를 받으며 한글을 깨칠 수 있었다. 그 후 신문 배달을 하던 중 대학생 아르바이트 형에게 무료 과외를 받으면서 성적이 중간 정도까지 올라갔다. 실업계인 안성두원공업고등학교에서 기계제도를 전공하고 천안공업전문대학(현 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 금형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를 했다. 그는 만 스무 살이 되기 전 혈혈단신 맨주먹만으로 서울로 상경해 모텔 청소부를 거쳐 2005년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자본금 5,000만 원을 가지고 후배와 공동 창업하였다. 2015년 현재 만 10년 만에 (주)야놀자를 숙박업계 1등 기업으로 일구었다.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시장에서 숙박과 여행이라는 아이템으로 닷컴기업에서 모바일기업으로 진화시켜가고 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숙식이 해결되면서 월급 또한 상당하다는 전화상담을 끝내고 한참을 고민하던 차에 일하기로 했다. 회사 다닐 때도 악착같이 월급을 모아 3년 6개월 만에 4,000만 원의 돈을 모았는데 까짓것 이것 하나 못하겠느냐는 마음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의 인생은 첫 실패로 기록된 주식투자와 도면쟁이를 거쳐 아주 잠깐이지만 주식 단타쟁이를 거치고 이제는 모텔쟁이로서의 새 삶을 이끄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무조건 가방에 속옷과 운동복과 슬리만 가지고 오라는데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가기로 마음은 먹었으나 겁이 덜컥 났다. 주변 친구들에게 혹시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첫 모텔 청소생활을 신도림에서 시작했다. 나는 꽃피는 봄에 회사를 퇴사하고 한여름에 주식으로 불을 태우다가 가을날 그렇게 모텔의 청소부로 혹독한 2001년을 보내고 있었다. 모텔 청소일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침대보 갈기 작업과 간단한 청소 등은 자정이 돼야 끝났다. 난생처음 모텔을 가보는 처지에서 왜 이리도 손님들이 많은지, 이것저것 분리수거하며 정리하면 밤 1시가 훌쩍 넘어갔다. --- p.29
나 스스로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도 나에게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아껴주는 존재가 됐다는 것,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또한 내 마음에 울림을 준다. 지나간 세월에는 아픔도 있다. 부모의 부재로 마음 한구석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꼈던 할머니의 임종은 유년기의 나를 흔들리게 했던 사건이다. 물론 사업하면서도 흔들렸던 시간이 있다. 그중에서도 2014년은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자 가장 큰 고비가 찾아왔던 순간이다. 2013년을 보내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야놀자는 겉보기에는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 관점에서는 성장을 멈춘 듯 보였고 야놀자인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효율성은 저하되고 있었다. 우리가 잘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산업의 흐름에 우리가 끌려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업이 성장한 이유가 단지 시기적으로 잘 얻어걸렸기 때문인지, 내가 이 시장구조에서 무능력한 사람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됐다. --- p.41~42
“야놀자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사실 나도 야놀자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 업무일지의 글들을 보니 시작단계에서의 환상보다는 고뇌하고 갈등하고 위기라 느끼는 부분이 있었기에, 또 한 번의 시작이 아니라 반복적인 시작을 했기에 아주 작은 기업이 처음보다는 조금 더 큰 기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반복적 시작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늘 쉽게 지친다. 사람의 특성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새로움이 없다면 끝까지 갈 힘이 어디에서 올까? 우리는 학자가 아니며 일반인들에 불과하다. 나 또한 그 일반인 중 한 사람으로서 나를 지치게 하는 요소, 장기적 결론이 나지 않는 답답한 것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또 다른 시작을 했다. 우리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역량으로 더 좋은 품질을 생산하기 위해 늘 시작이란 표현을 자주 하며 기업을 이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시작할 때 마음가짐이 강하며 단호하다. 무엇이 됐든 시작할 때는 끝까지 간다라는 메시지를 가슴과 머리에 새긴다. 그러나 과정 중에서 힘듦이 나타나고 위기가 찾아오고 인내의 한계를 만나면 슬슬 자기도 모르게 포기라는 아주 달콤한 사약이 찾아온다. 그 맛은 달콤하지만 먹으면 죽어버린다. 그런 아주 못된 녀석이 우리 곁에서 호시탐탐 늘 노리고 있다. 그러니 사람의 심정이 얼마나 나약한가. --- p.48~49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 문구는 항상 나 혼자 중얼거리며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고 내 행동에 새기는 내 인생의 좌우명이다. 무엇을 만들든, 어떤 결과가 되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가치의 지향점이다. 시시하게 해놓고 대충 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나 열심히 했어. 이 정도면 다 한 거지.” 하고 만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가 있겠는가. --- p.52
나는 인생을 살면서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웠다. 그중 일부는 이미 달성한 것도 있고 수정되거나 폐기된 것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준 목표도 있다. 2003년에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여든세 살이 되면 이뤄야 할 목표를 세웠다. 무려 57년이 걸리는 이 장기적인 목표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때 세운 첫 번째 목표는 83세까지 3,000억 원의 자산을 갖는 것이었다. 가진 것 없이 20대 젊은이가 3,000억 원의 자산을 갖는 것이었다. 가진 것 없는 20대 젊은이가 3,000억 원을 벌겠다니 이 얼마나 허황된 목표인가? 스물여섯 살의 나 역시 그걸 몰랐던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당장 3,000억 원을 벌겠다고 했다면 그것은 허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한을 57년 후로 설정했고 그 기간 3,000억 원이란 숫자를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계획했다. 당장 1년 후에 달성할 목표는 크지 않았지만 2년, 3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목표의 크기를 늘렸다. 나조차조 가능할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숫자였지만 어쨌든 계획을 세웠고 달성하기 위해 행동했다. --- p.171
요즘은 그렇다. 뭔가 보일 듯하다가도 감춰지고 뭔가 될 듯하다가도 어디로 사라지고.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이 터널을 지나면 분명 사람들 살아가는 세상이 나올 것인데 터널은 길기만 하다. --- p.189
무엇을 변화시켜야 잘 살지 모를 때, 어찌해야 나의 미래가 밝아질지 모를 때는 어제보다 1퍼센트만 더 집중하자. 1퍼센트라도 성장을 시키자. 힘든 일일수록 더 긍정으로 어제보다 1퍼센트만 웃으며 대하자. 무엇을 변화시켜야 살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나의 미래가 어떻게 살아야 좋아질지 어떻게 살아보지 않고 알겠는가? 다만 남들보다 더 잘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보다 더 잘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남들이야 어찌되었든지, 내가 발전하고 내가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의식하지 말자. 남이 나를 보는 시선에 의식되지 말자. 남이 나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나도 왠지 그들과 같은 일을 해야 하고 그들과 같은 행동과 같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나의 인생은 단 한번이고 나의 얼굴도, 나의 몸도, 나의 이름도 결국 나의 것이다. 환경에 대한 어설픈 변명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방치하는 삶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살아가야 하는 근성을 지닌 생명력이다. 지금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내 생을 아름답게 꽃피게 할 중요한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의 날이 밝았다.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