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는 결례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이라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 많고도 많은 문학상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 작가에게 주어지지 않은 사실에서, 공선옥 소설에 대한 주류 비평가들의 비평적 냉대의 한 지표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세대에 속하는 몇몇 대중적인 작가들이 마치 퇴역 군인들의 가슴에 주렁주렁 달린 훈장처럼, 성격이 다른 문학상을 ‘싹쓸이’하듯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기야 평론가 황현산이 한 칼럼에서 지적했듯, 한국의 문학상 제도라는 것이 뛰어난 작가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몇몇 문인을 비껴가는 경우는 유독 공선옥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공선옥_하야우중(夏夜雨中): 슬픔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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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인들의 대다수는 신동엽이 말한 '대지'에 뿌리박고 살지 않고, 절대다수가 대학의 연구실이나 쾌적한 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있다. 그들은 오직 자기 고통에만 충실한 맹목기능자 또는 학식 있는 무식꾼들이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민족적 고통은 물론이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민중)들의 쓰라린 고통에 대해서는 심각할 정도의 '불감증'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 문학이란 제법 고고하고 귀족적인 예술행위라는 선민의식과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데, 밥벌이와 위신세우기로 점철되어 있는 그 알아먹기 힘든 암호와도 같은 문학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신동엽은 이미 40여 년 전에 당대 문단을 향해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신동엽_‘싸우는 시대’의 문학적 쟁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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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소망했던 ‘통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가 고통스러워했던 ‘분단’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가 등단 이후 평단에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따스한 채찍과 높으신 판가름”은 이제서야 시작 중이다. 어떤 시대는 한 인물이 살기에 전혀 적당하지 않은 환경을 제공했다가, 기막히게도, 그가 더 이상의 소망을 품을 수 없는 무(無)로 환원된 후에야 그의 인생의 의미를 가까스로 환기시킨다. 살아서 고독했고, 죽어서 가망 없는 한 비평가에 대한 연구가, 문학적 탐구의 원질인 ‘삶의 불가해성’과 맞닿아 있는 것은 여전히 아이러니컬한 정서로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일수 비평에 대한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며, 말의 정당한 의미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최일수_최일수 비평의 복원과 재구성의 방향에 관한 시론(試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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