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적인 신앙생활과 최근 세계 기독교 역사의 주요한 발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검토한다. 또한 전 세계 기독교의 특징을 급격히 바꿔 놓은 일련의 사건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역할이 끼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세계에서 한 일, 더 중요하게는 미국인이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 형태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이 책이 보여 주길 바란다.
---「서론」중에서
이 책의 중간부인 3-6장에서는, 최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미국이 기여한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의 영향력이라기보다 미국의 형식이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을 설명하는 책의 첫 번째 부분인 1장에서는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고, 이런 새로운 현실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지 간단히 요약한다. 2장에서는 19세기 복음주의권의 몇 가지 발전이 어떤 점에서 20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변화의 전조였는지를 설명한다.
핵심 주장은 두 번째 부분에 담겨 있다. 먼저 3장에서는 미국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을 자세히 논한다. 4장에서는 미국의 해외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20세기 선교 활동 역사를 수치로 보여 준다. 같은 맥락에서 5장에서는 현대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발전할 때 그 배후에 이를 통제하는 미국인의 손이 존재했다는 비판을 검토한 후 그 비판에 대한 반응을 간략히 소개한다. 6장에서는 앞서 제시한 자료를 활용해 이 책의 핵심 논증으로 되돌아간다. 즉, 기독교 세계라는 오래된 유럽 형식보다 19세기 북미에서 발전한 기독교의 형식이 현대 세계 기독교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을 미국의 직접적 영향력 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논증한다.
---「서론」중에서
19세기는 전 세계가 자신의 교구라고 주장한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야심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자들에게 ‘위대한’ 세기였다. 또한 이 세기가 제기한 도전 때문에 ‘위대하기도’ 했다. 복음주의 기독교 ? 갱신된 옛 기독교 ? 는 19세기에 세계 전역으로 전해졌고 20세기에는 훨씬 많은 곳에 이식되었다. 복음주의 운동이 옛 문화적 상황과 새 문화적 상황 속에서 힘을 사용하는 방식은 21세기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권력, 문화 같은 현대적 사안에서 미국과 미국 신자들이 수행한 역할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거의 없다. 특히 복음주의자들에게 미국은 활동, 프로그램, 인력, 세계 전역으로 퍼져 가는 영향력의 중심지였다.
---「2장 미래 예측」중에서
오늘날 세계 기독교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이 세계의 강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힘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미국 사회와의 더 광범위한 상호 작용을 통해 발전된 미국의 독특한 교회사와 미국 기독교 역사다. 결국 미국 기독교와 세계 기독교의 관계가 직접적 영향력보다는 유사한 역사적 발전을 내포하고 있다면, 단순히 미국의 영향력의 성격과 범위를 평가하려는 노력보다는 미국 기독교 신앙의 특징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3장 문제 제기」중에서
책임 있는 분석가라면 한국 개신교의 경험과 미국 개신교의 경험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는 한국보다는 미국 문명에서 더 오랫동안 핵심적 지위를 차지해 왔다. 한국 개신교인들은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 19세기 중반 몇십 년 동안 미국 문화를 지배한 것처럼 자기 나라의 문화를 지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미국 교회는 외세의 점령을 견뎌야 했던 적이 없으며, 1860년대 이후 국내 전쟁 때문에 교회가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은 적도 없다. 서양 고전 학문이라는 배경 때문에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동양 고전 학문을 다룰 때 직면하는 문제와는 다른 문제가 더 중요했다. 끈질기게 마법에 의지하는 서양의 민속 신앙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샤머니즘 성격이 강한 한국의 민속 신앙에 대응하고자 할 때 직면한 것과는 다른 어려움을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실제적인 삶에 제기했다. 미국 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교회가 경험한 이산의 고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미국 교회는 한국 교회보다 세계의 다른 지역 상황에 대해 아마도 더 모르고 있을 것이다(즉,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미국에 소개된 것에 비해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한국에 더 많이 파고들었다). 이런 점들은 한국 개신교인과 미국 개신교인을 서로 대조될 수밖에 없게 만든 역사적 차이점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 외에 다른 차이점들이 더 있음에도 둘 사이의 유사성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여러 놀라운 유사점을 감안할 때,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는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숙고해 볼 점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두 역사의 유사성으로 인해, 미국 개신교 역사를 평가한 내용이 한국 신자들에게 (그리고 새롭게 기독교세계에 속하게 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면 아주 유익할 것이다.
---「8장 한국 기독교는 미국 복음주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