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안경을 통해 그녀와 대면한 후, 사흘째 밤이었던 것 같다. 소등한 지 꽤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으니, 아마 열 시나 열한 시쯤 되었을 것이다.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병실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집 앞 거리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전에 본 검은 벤츠가 빗속을 뚫고 와서 문 앞에 정차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바로 쌍안경을 꺼내 벤츠에서 내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엿보았다.
운전기사가 뛰어 내리더니, 자신이 젖는 건 개의치 않은 채 우산을 펼치면서 황급히 차 뒷좌석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뒤에서 우산을 씌워주는 기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다소 화가 난 듯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검게 젖은 포장도로에 내려섰다.
아버지는 은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는 잰걸음으로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사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그 뒤를 따랐다.
뒷좌석 문이 열린 채 비를 맞고 있었다. 와이퍼도 괜스레 움직였다. 나는 뒷좌석 시트가 비에 젖지 않을까 염려됐다. 그 문이 갑자기 닫혀서 보니, 운전수가 돌아와 있었다. 그는 쓸쓸하게 운전석에 올라타고 그대로 떠났다.
골짜기집의 현관문은 꼭 닫혀 있었다. 쌍안경을 무릎에 놓고 육안으로 일광욕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곳 외에는 집 안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광욕실은 커튼이 쳐진 적이 없었다. 아니, 그곳엔 커튼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밤이라 그런지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일광욕실은 그저 까맣게만 보일 따름이었다.
그래도 5분 정도 어두컴컴한 일광욕실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 생각을 고쳐먹고 일단 쌍안경을 눈에 대보았다. 쌍안경으로 보면 혹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흐릿하게나마 일광욕실의 내부가 보였다. 내가 몇 번이나 보아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무슨 그림자인가 싶었지만, 가벼운 움직임으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일광욕실의 유리를 따라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까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유리창 옆의 그림자가 아버지의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갑자기 그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눈에 대고 있던 쌍안경을 아플 정도로 세게 눌렀다.
그림자 같은 것이 요란하게 일광욕실의 바닥에 쓰러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있었나?!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시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쓰러진 그림자가 느릿느릿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약간 살집이 있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또 격렬하게 움직이며 바닥에 누운 사람을 걷어찼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것 같더니, 이내 꾸물꾸물 일어났다. 푸르스름한 옅은 빛이 그 인물의 얼굴 부근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그녀였다.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남편에게 뭔가를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갑자기 어머니도 때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들어오면서 열어놨던 문 안으로 들어가, 분노에 가득 찬 걸음걸이로 안쪽으로 사라졌다. 어머니가 남편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일광욕실에 홀로 남겨졌다. 나는 아플 정도로 두 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바닥에 웅크려서 우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 그대로 있었다. 비와 어둠의 저편에서 그녀가 혼자 울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이 메어왔다. 그래서 쌍안경을 눈에서 떼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화가 난 듯 난폭하게 문을 열더니, 그녀 역시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텅 빈 일광욕실을 바라보았다. 내 심장이 폭풍우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격렬하게 뛰었다. 방금 전에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있었지만, 더 이상 누군가 일광욕실로 돌아올 기색이 없어서 포기하고 쌍안경을 베개 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병실의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빗소리 속에서 두서없는 공상이 잇달아 떠올랐다. 하지만 공상은 역시 공상일 뿐, 정답은 아니다. 나는 다시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창가로 다가가 일광욕실을 쳐다봤다. 육안으로 보면 그저 깜깜한 유리방일 뿐이었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자려고 했지만, 만약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베개 밑의 쌍안경을 꺼냈다.
일광욕실을 봤다. 그러자 역시나―, 또 아버지의 검은 그림자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놀랐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아버지의 검은 그림자 뒤쪽에서, 소리 없이 문이 열리는 참이었다.
들어온 사람은 딸인 것 같았다. 깜깜했기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희미한 실루엣으로 알 수 있는 몸집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비 내리는 심야였지만, 쌍안경의 시야에는 어스름한 푸른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그 약한 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멀리 떨어진 병실에 있던 나는 혼자 전율했다. 아무리 봐도 그건 식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병실에 형광등이 깜빡이며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