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나 마흔이 되기 전에 알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관계의 현실성이다. 관계의 현실성은 관계의 따뜻함과 냉혹함을 모두 경험했을 때만 알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며, 작은 이득 앞에서 표변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기억은 종종 아주 편파적이어서 얻어먹은 밥 한 그릇은 다음 날이면 잊어버리지만 자기가 사준 커피 한 잔은 평생 잊지 않는다는 것. 모두 다 자신에게만 유리한 계산법을 갖고 있어서 항상 자신이 양보했고 언제나 덜 돌려받았다고 항변하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를 받치는 어두운 쪽의 한 특질이며 관계의 현실을 말해 주는 한 측면이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은 그 자체로써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서, 더 튼튼하고 깊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관계의 목적은 무엇보다 안전함을 확보하는 데 있다. 안전함이라는 말은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두 가지 요건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본다. 그 하나는 ‘신뢰’이고, 또 하나는 ‘진정한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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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서 마흔둘,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나이는 여성들에게 있어 ‘마(魔)의 2년’이다. 젊음에서 늙음으로 향하는 중간지대, 일종의 삶의 연옥과 같은 시간 영역, 여러 가지 변환의 시기이며 불안한 많은 것들이 확정된 상태로 자리 잡기도 하는 시기이다. 삶은 도약을 꿈꾸지만 안주하려는 기운에 부딪쳐 몸부림친다. 그래서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면, 그리하여 이 시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게 보내 버린다면, 탈색된 에너지로 근근이 버티면서 살게 될 것이다. 이 시기에 삶의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면서 그 변화를 현실에서 어느 정도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이후의 삶은 여러 부분에서 박제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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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가로서 오랜 경험을 통해 선한 삶에 대한 나름의 배움이 있었다면 이런 것이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뺏거나 구태여 의도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절반의 선함일 뿐이다. 남의 것을 빼앗지도 말아야 하지만 부족한 이에게 나누는 마음을 실천하는 일,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필요한 정서적 지지와 마음 아픈 이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진심의 위로와 섬세한 배려를 제공하는 것까지가 나머지 절반의 선함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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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한국 남자들이 목이 쉬도록 외쳐 대는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들으며, 문득 그들에겐 ‘열심(熱心)’만 있고 마음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그러면 그들에게는 어떤 마음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마음에서 열심히 살았는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물어봤다. 나는 지금껏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내 친구 재영이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구출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지, 그 마음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우리에게 마음이 있는가? ‘열심’은 있지만, 그것은 결국 어떤 결핍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모두들 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정작 마음은 어디에 두었는지, 한 번도 자기 마음은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것은 아닐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솔직히 나는 그들이 꼴 보기 싫어졌다. 고개를 돌리지도 들지도 않고, 그날 밤 혼자 마신 술은 두 병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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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대’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무언가에 점령당해 있고, 끊임없이 혹사당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의도를 따르기 위해 한 번도 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뭔가에 얽매이고 압사당해, 개인의 고유성이 담긴 마음을 찾거나 헤아리기 어렵다. 마음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상태, 준비된 상태, 설레는 상태, 긴장된 상태, 또는 때로는 아주 편안히 쉬는 상태라야 건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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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되는 삶’은 단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노동 과정과 노동 유형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숙련 노동자에 대한 의미 부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일 자체에서도 인간의 위치는 새로운 기계나 기술에 의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이제 거의 없다. 정규직도 비정규직을 보며 늘 ‘내 일자리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모든 일과 노동이 이렇게 대체재를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 출현하는 것이 바로 ‘대체될 수 없는 노동’, ‘의미 있고 창의적인 일’이라는 환상이다. 그런 일을 찾기 위한 스펙 쌓기 경쟁과 자기 계발은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만드는, 고도의 지배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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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우울 역시 어떤 에너지의 심리적 양태다. 그 에너지는 우리의 삶이 외부로만 뻗어 나가 자신에게 민감하지 못했을 때, 그 균형을 잡고자 구심력을 발휘하는 힘이다. 자기 삶의 중심축에 근접할 수 있도록 내적 균열을 치유하라는 강제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균열의 지점을 더듬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시 회복의 전망을 바라게 된다. 우울은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의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반동력이며, 세상으로부터의 일시적 망명을 명령하는 내면의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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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자문에 필자는 이렇게 자답하려 한다. 나는 무엇보다 ‘세대 간 공생을 위해 기여하려는 노력’, 그 자체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 그것이 인류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삶의 연속성을 세대 간 협력을 통해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오늘날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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