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는 안타까움이 있다. 한국 땅은 천국이었고, 한국인들은 그 천국에 살던 군자들이었는데, 지금의 한국은 천국이 아니고, 지금의 우리도 군자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늘, ‘이게 아닌데’, ‘이건 아니야’,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등등의 불만이 쌓여 있다. 이것이 한국인의 한恨이다. 이 한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내가 군자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고, 이 나라가 천국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34쪽, ‘한국인의 안타까움, 한’ 중에서
중종은 인종의 교육을 전적으로 하서 선생에게 맡겼는데, 이때 선생은 인종의 훌륭함을 알았다. 내성외왕內聖外王, 임금은 원래 성인이어야 한다. 내적으로 성인이 된 사람이 외적으로 왕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성인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학에서 말하는 정치의 원리이다.
인종은 너무나 훌륭했다. 성군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유학의 목적은 자기를 완성하고 타인을 완성시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 이것은 뜻있는 유학자가 꿈꾸는 최고의 이상이다.
이러한 유학자의 염원이 정암 조광조 선생에 의해 불이 붙었다가 실패로 끝났다. 이를 본 하서는 너무나 안타까웠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서는 남곤, 심정 등의 죄를 임금에게 진술했다. 정암의 죄 없음을 진술하는 것은 임금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했으나, 하서 선생은 과감히 나섰다. 하서 선생은 당시 56세의 중종에게 대항하여 정암 조광조 선생의 무죄를 끝까지 주장했다. 하서 선생의 안타까움은 목숨도 두렵지 않은 것이었다.
|45쪽, ‘하서의 꿈과 좌절’ 중에서
하서의 한 평생은 슬픔과 좌절의 한 평생이었다. 그 뒤로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간 적이 없었고, 서울에 올라간 적도 없었다. 그러나 하서는 한평생을 좌절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천국 건설의 꿈을 접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55쪽, ‘하서의 꿈과 좌절’ 중에서
하서의 수양 공부는 철저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수도자의 그것이었다. 도를 닦는 길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며 건전하게 학문에 열중하는 데 있다. 수양에 몰두한 하서는 큰 경지에 올랐다. 그러고 나면 육신의 생명에도 구애받지 않는데, 하물며 부귀영화 따위에 마음을 쓸 것은 더더욱 없었다. 하서가 벼슬에 초연하고 부귀영화에 초연한 것은 수양을 통해 터득한 그런 경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60쪽, ‘좌절 딛고 피우는 새로운 꿈’ 중에서
중산보는 당시의 임금 문왕을 도와 천국을 건설한 인물이었다. 하서 선생의 뜨거운 열정은 양산보를 만날 때마다 다시 불타올랐다. 양산보가 가진 땅에 천국을 건설하자! 거기가 천국을 건설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하서 선생은 양산보와 논의하여 천국 건설에 들어갔다. 소쇄원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70쪽, ‘좌절 딛고 피우는 새로운 꿈’ 중에서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동산 ‘원園’.
‘소쇄’라는 말이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들어 있던 말이라는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소쇄원은 인품이 맑고 깨끗해 속기俗氣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란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말하자면 천사들이 사는 천국이란 뜻이다.
하서 선생의 천국으로 들어서자 먼저 대숲이 나왔다.
|74쪽, ‘소쇄원에 들면서’ 중에서
담에 애양단愛陽檀이란 글자가 보인다. 햇빛을 사랑하는 단이란 뜻이다. 예전에 애양단이 있었던 자리일 것이다. 애양단 앞에 서니 마음과 몸이 따뜻해진다. 애양단이 속삭인다. “험한 세상 사시느라 고생이 많았지요?” “내가 차가운 바람을 다 막아줄 테니, 이제는 내 품에서 따뜻하게 쉬세요.”
|83쪽, ‘소쇄원에 들면서’ 중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가 천국이고, 자연 그 자체가 천국이다. 그런 천국을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훼손을 했다. 훼손만 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천국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하면 그대로 천국이다. 소쇄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어느 땅 하나도 손댄 것이 없다. 언덕을 깎은 곳도 없다. 태고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언덕이 있고 물이 흐른다.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 소리 들린다. 비 갠 하늘에 밝은 달이 떠오른다. 제월당霽月堂이다.
---90쪽, ‘소쇄원을 거닐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