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저 작고 초라한, 그러면서도 놀랍도록 영리한 자기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일이지요. 시간을 들일 필요도, 분석할 필요도 없이 한눈에 구조가 드러납니다. ‘나’, ‘내’ 눈물, ‘내’ 가족, ‘내’ 나라, ‘내’ 믿음, ‘내’ 종교, ‘내’ 고향, 이들 추악한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전쟁에도, 어떤 폭력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가슴으로 이를 깨달을 때, 깊숙이 숨은 ‘나’를 바라볼 때 비로소 슬픔을 끝낼 열쇠가 나옵니다. 이 열쇠를 사용해 경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순진무구한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마음, 인간이 수세기 동안 찾아 헤맸던 그 마음을 보게 해주는 것은 완전한 순진무구함-총체적 비움과 멈춤- 하나뿐입니다. --- pp.61~62
위험을 보면 행동해야 합니다. 이는 항상 바라보고 듣고 배우는 마음, 언제나 행복한 마음에게만 가능합니다. 행동은 늘 현재진행형입니다. 행동에는 분리와 갈등이 없습니다. 배움은 움직임입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결론이나 공식, 의견, 판단을 가진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은 거대하고 복잡한 삶의 문제와 제대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 앞에 놓인 상황입니다. 과거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 시도는 집에 난 불을 끄지 못합니다. 불을 끄려면 새로운 마음, 자유롭게 움직이는 마음,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당신이 보고 알아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리는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 깨끗한 마음입니다. --- p.78
우리는 인간,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그 세상을, 세상과 우리가 맺는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곧 세상입니다. 세상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전쟁은 우리의 전쟁입니다. 우리 인간이 전쟁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관찰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이해하십시오. 행동하는 것이 곧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 상태가 되어야 현실이 있는지 없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론도, 책도, 스승도, 제자도, 추측도 없습니다. 이 마음은 희열을 아는 마음입니다. --- p.86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 만년설 봉우리처럼 장엄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거대한 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일순간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모두 쓸어내 버립니다. 그 순간에는 바라보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떼 부리던 아이라 해도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면 한참 동안 조용해집니다. 장난감이 아이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대단한 아름다움을 보면 거기 빨려 들어갑니다. 다시 말해 자기의 고통이나 이해관계가 사라질 때 거기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자아가 있는 곳에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자기 이익이 중요한 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과 아름다움은 함께 다닙니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된 별개가 아닙니다. --- pp.124~125
사랑은 바로 그곳, 잔잔한 수면에, 나뭇잎에, 빵 조각을 찾아 꿀꺽 삼키는 오리에, 곁을 지나가는 절름발이 여자에게 있습니다. 사랑은 낭만적인 환상도, 포장만 그럴듯한 계산적인 말도 아닙니다. 사랑은 자동차나 보트처럼 그렇게 현실적인 것으로 거기 존재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처한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아니, 해답을 준다고 하는 말은 옳지 않겠군요. 그 호숫가에는 아예 문제가 없으니까요. 우리는 문제를 상세히 분석하면서 사랑 없이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문제는 점점 더 크고 복잡해집니다. 사랑에 접근하는 길, 붙잡는 길 따위는 없습니다. 하지만 길가에, 또는 호숫가에 멈춰 서서 나무나 꽃, 밭가는 농부를 바라본다면, 꿈꾸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면 아마도 사랑이 찾아올 겁니다. --- p.144
그리하여 인간은 영원히 성스러운 것을 다시 찾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중재자, 성직자, 명상가 등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빛은 다른 사람, 제아무리 훌륭한 철학자나 심리학자에게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전통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자유는 애착도 두려움도 없이 홀로 서는 것입니다. 욕망이 환상을 낳는다는 점을 이해한 채로 말입니다. 홀로 있기는 엄청난 힘을 의미합니다. 프로그램 되어 있는 두뇌는 지식으로 가득 차 단 한시도 홀로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프로그램 된 상황은 늘 한계를 가집니다. 한계는 갈등의 주된 요소입니다. --- p.183
진행자: 어째서 우리는 모두 절박하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인가요?
크리슈나무르티: 절박하게 공허하고 외롭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선생님께서는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 물론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공허함과 고독을 이해해야 합니다. 야망, 탐욕, 공포, 죄의식, 고통에 시달리며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조각조각 분리된 마음은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분리는 슬픔의 원인입니다. ‘너’와 ‘나’를, ‘우리’와 ‘그들’을, 흑인과 백인을 나누고 분리하는 것 말입니다. 선은 분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세상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 p.211
우선 보고 만지고 관찰하고 들어야 합니다. 새 울음소리, 나뭇잎 스치는 사각거림뿐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 느끼는 감정 같은 작고 사소한 것까지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귀 기울여 듣되 그 말이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지는 마십시오. 그저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감각의 예민함이란 제멋대로인 상태도, 충동에 대항하거나 억눌리는 상태도 아닙니다. 그저 마치 기차선로 위를 걸어갈 때처럼 마음이 늘 앞을 주시하도록 하면 됩니다. 간혹 균형을 잃고 선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곧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온몸이 생동감 넘치고 예민한 감각을 지니며 균형을 찾게 됩니다. --- pp.218~219
우리가 사는 사회는 서로에 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 관계에 사랑이 없다면 그저 서로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뿐이라면 결국 부패가 생겨납니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가진 이 멋진 곳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고만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들 서로의 관계가 파괴적이고 다툼과 투쟁, 고통과 절망에 싸여 있다면 우리는 바로 그러한 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럼 우리 각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부패된 현실은 그저 추상적인 개념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현실입니까?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