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 때였을 것입니다. 나는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처음 읽었어요. 그 책은 너무나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낡은데다 작가의 스타일조차 난해하기 그지없었지만 나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책이 비록 18세기 나폴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이자 수사학자가 쓴 것이긴 하지만, 역사와 세계에 대한 저자의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태도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겨주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1장 30쪽)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비코가 데카르트의 인식론만이 아니라 그것이 결과하는 배타적 개인주의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 자신은 정치에 무관심했으나, 그의 회의주의는 그가 말하는 진리의 구현체로서의 합리적 또는 자연적 사회의 구축 가능성을 암시한 점에서 하나의 해방의 논리라는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비코는 이러한 회의주의가 앞서 말한 인간의 공통감각에 대한 회의를 결과하여 각자 자신의 판단이나 욕구 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며, 그 결과 사회를 고독의 상태로 타락시키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머리말 처음에서 인용한 비코의 당대 사회에 대한 처절한 비판의 근거였다.
(3장 144-145쪽)
비코는 당대의 주류였던 자연법론, 사회계약론, 공리주의, 개인주의, 유물론, 이성주의 등을 모두 부정했다. 즉 그들이 오류에 빠진 것은 체계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인간적 전망과 동기의 영속성, 그리고 그 전망과 동기가 다시 인간 본성의 변화하는 요구에 의해 반복적으로 지배됨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불변적이고 선험적인 인간 본성의 존재를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구 정신을 통째로 부정했다. 이러한 서구 정신이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것을 생각하면 비코는 여전히 현대 서양 문화에 대한 비판가로 생명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7장 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