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소비행위는 합리적인 소비자로서의 인간관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인간의 소비행위가 생존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비행위는 밖으로 표출되는 경제적 액수보다 행위 속에 담긴 문화적·사회적 의미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비는 경제행위 당사자 간의 거래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고 사회 총체적인 문화행위로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다양한 소비재의 속성과 생산방식, 사용방법에는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관, 제도, 규범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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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소비자들이 글로벌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코카콜라 대신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모티브로 생산한 메카콜라를 마시고, 서구의 바비 인형 대신 무슬림 여성들의 전통 의상인 히잡과 부르까를 쓴 풀라와 라잔을 사며, 할리우드의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대신 이슬람의 영웅 이야기인 THE 99을 시청하는 것은 바로 이슬람의 문화적 가치가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슬람의 가치가 반영된 상품의 소비를 통해 무슬림은 서로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끼는 동시에, 더 중요하게는 소비행위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경건성을 심화하는 것이다. 즉, 무슬림은 이슬람의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물품에 대한 소비활동을 통해 종교심을 구체화하며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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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무슬림이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종교 공동체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삶의 방식은 서로 다르며, 이는 결과적으로 무슬림의 소비행태도 다양하게 나타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다양한 무슬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기 자신의 고유한 언어와 전통, 관습을 유지하는 가운데 글로벌 소비문화와 조우하고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독특한 소비문화를 창출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슬림이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움마(ummah)’라는 이슬람 공동체를 토대로 정의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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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의 이슬람식 소비문화란 상품의 생산자가 무슬림인지 비무슬림인지를 떠나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무슬림의 소비행태와 글로벌 상품이 이슬람의 옷을 입고 재탄생한 물품을 소비하는 무슬림의 소비행위 모두를 포함한다. 이슬람의 가치가 내포된 상품을 선택하고 이를 사용함으로써 무슬림은 자신의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기억’하고 ‘창출’할 뿐만 아니라 소비를 종교의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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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대의 특징은 무슬림 여성의 삶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무슬림 여성은 인터넷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사회 참여 기회를 넓혀나가고 있다. 일례로 인터넷을 통해 이성과 교제하거나 사이버 대학에 등록해 교육을 받기도 하며 온라인 사업에 뛰어드는 등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일부 여성은 인터넷을 활용해 여행, 제빵, 요식 등의 사업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도 창출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력 형성은 결과적으로 여성의 발언권 강화와 권력 형성으로 이어지며, 이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가 향후 변화할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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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에이티커니(A.T. Kerney)에서 2010년에 발표한 통계를 보면, 이를 반증하듯 이슬람 할랄 시장의 규모는 이미 2조 1,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그중 식음료 부문이 1조 4,000억 달러, 의약품이 5,600억 달러, 나머지는 건강관리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할랄 산업이 과거에는 무슬림의 먹고 마시는 문제, 즉 식음료 분야에 주로 한정되었다면, 최근에는 그 영역이 의류, 의약품, 화장품, 관광, 금융, 물류산업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 p.70~71
맥도널드는 서구에서 탄생한 기업이지만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에는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현지화에 애쓴다. 일례로 맥도널드는 할랄 치킨 너겟으로 이슬람 시장에 진출했으며, 그에 대한 무슬림의 호응도도 높다. 또한 무슬림의 금식월인 라마단 달에는 ‘자비’와 ‘관용’을 콘셉트로 한 광고전략으로 무슬림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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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환대문화, 호화로운 결혼문화, 라마단 기간에 쓰레기로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음식물, 그리고 아랍 부호의 호화로운 소비문화 등을 고려할 때, 아랍인은 ‘나의 필요’보다 ‘남의 시선’을 고려한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앞서 언급한 소비문화의 동인 외에도 아랍인들의 소비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동인으로 무슬림의 전통적인 가치체계인 체면문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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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은 절제의 기간인 동시에 축제의 기간이자 소비의 기간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을 장만해서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과 나눠 먹고, 자신의 집에 초대된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물품을 사기도 한다. 이를 겨냥해 회사들은 라마단 기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소비자들은 라마단을 중심으로 1년 소비 예산을 짠다. …… 과거 이슬람 지역에서는 라마단이 비즈니스 중단의 달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비즈니스 특수의 달로 변모하고 있다.
--- p.104~105
풀라 인형은 무슬림뿐 아니라 비무슬림에게도 인기가 있다. 이는 다문화를 교육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을 형상화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아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이러한 제품의 적법성을 놓고 논쟁이 치열한데도 풀라 인형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모에게 ‘좋은 이유로 돈을 쓰는’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다. 풀라 인형은 무슬림 아이들에게 이슬람식 삶을 살아가는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스럽게 이를 내면화하는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 p.133
걸프 지역 여성들의 과시적 소비 현상은 여성의 경제력 향상과 함께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저녁 시간대가 되면 아랍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걸프 지역에서조차 아바야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예전에는 금기시되었던 영화 관람을 하기 위해 극장 앞에 모여 친구들을 기다리기도 하며, 친구들과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 공적인 공간에서는 ‘감춰진’ 여성이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소비문화의 공간에서는 가장 ‘드러나는’ 문화코드로 부상한 것이다.
--- p.161~162
온라인으로 물품을 구매할 때 무슬림 소비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결제 시스템이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이슬람 금융에서는 ‘리바(riba)’라고 부르는 이자 수취에 부정적이다. 기본적으로 신용카드는 이자 발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슬람교의 가치에 따라 소비하기를 희망하는 의식 있는 무슬림은 일반적인 신용카드 결제를 꺼린다. …… 그러나 무슬림의 온라인 소비활동이 늘면서,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지 않되 편리하고 효율적인 결제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p.164
결국 아랍인에게 비즈니스는 개인적인 일이다. 그래서 아랍인에게 비즈니스 대상은 그가 상대하는 파트너 개인이지 그 파트너가 속한 ‘추상적인’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일이 잘 진척되거나 반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때 신뢰와 비난의 대상도 파트너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심화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아랍을 상대로 비즈니스나 외교 업무를 할 때에는 부서 이동이나 파견 근무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부서가 바뀌거나 새로 부임해 온 사람은 아랍인 상대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보다 신뢰를 우선시하고 협상보다 평판에 의존하는 아랍의 비즈니스 문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 p.210
이슬람 시장과 마케팅 윤리는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의 비즈니스 윤리보다 사회적 윤리를 더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슬람 마케팅에서는 근거 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거나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 그리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는 상행위, 부당하거나 불안전한 물품, 특히 이슬람에서 금지하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취급하는 행위, 물질주의 추구 등을 배척한다.
--- p.219
할랄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윤리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인식 때문에 무슬림은 물론 비무슬림에게도 인기가 있다. 영국의 할랄 화장품 회사인 사프 퓨어 스킨케어는 식물성을 주원료로 하고 동물성 원료를 배제했으며, 천연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회사 제품 구매자의 75%가 비무슬림이다.
---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