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했다. 암울한 소설가로 평생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누구에게나 그렇듯 인생의 복병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복병은 주님. 그분을 만나 예상치도 못했던 동화작가가 되고, 헬로 베이비 태교학교의 팀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소외된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무조건 안고 울었다. 그 마음을 시작으로, 교회에서 둥둥 떠다니는 친구들을 모아 비전반을 만들고, 청소년들의 써나쌤이 되고, 청소년 책을 쓰고, 청소년 강의를 하면서 멈춰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그 모든 일에 벅차올라 그렇게 평생 청소년 쉬키들과 살고 싶었는데, 어느새 초창기에 만난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어 나타났다. 그저 사랑스럽던 쉬키들이 교회 동생이 되어 찾아와서는 어쩌면 그렇게 독설을 품게 하는지…. 이제는 혼자 걸을 때가 되었는데도, 손 붙잡고 걸음마를 시켜 달라는 그들에게 “이제 스스로 해. 혼자 걸어!”라고 말하고 싶어 교회 누나의 독설이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상담이 들어왔고, 같은 방식으로 답을 올렸다. 그 내용으로 강의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청년을 위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사랑을 품고 있으면 독설도 사랑이라고 믿으며, 그녀는 오늘도 거침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있어 보이는 선배이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거라곤…’에서 네가 행복한 게 흰 밥이라고. 계란 프라이는 네가 얹어 주지 말라고. 그 아이 스스로 얹을 거야. 언젠가 보았거든. 네가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아주 맛있게 먹는 걸 말이야. --- p.12
‘난 미안하다고 했거든요’에서 그거 알아? 손 흔들었다고 멈춰 주면 기사 아저씨도 징계를 받아. 그건 정류장에 멈췄을 때만 승객을 태우겠다는 규율을 어긴 거거든. 그걸 감수하고 널 위해 버스를 멈춰 준 거야. 그런데 넌, 네가 손을 흔들어서 멈췄으니 손을 흔들지 않은 것보다 백 배 나은 자신을 칭찬하고 말 거야? 그 무슨 호랑말코 같은 행동이야? 멈춰 줬으니 고맙다고 말하고, 가방에 든 빵이라도 꺼내서 건네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할 거 아니야. --- p.58~59
‘요즘 유명한 어른들을 만나러 다녀요’에서 가끔은 책이나 명강의에서 얻을 수 없었던 말을 아주 평범한 어른에게서 얻을 때가 있어. 얼마 전에 말이야. 어느 장로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한 권사님이 음식을 차려 주며 말씀하셨어. “잘 왔어요. 살다 보면 세상에는 남의 일이라는 게 없어요.” --- p.136~137
‘다들 서로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네요’에서 발톱을 감추라는 얘기가 아니야. 은폐는 또 언젠가 제멋대로 분출되는 악을 낳을지 모르는 일, 잘라 낼 발톱은 과감히 잘라 내고 그래도 하나의 발톱은 꼭 필요하다면, 그건 발톱의 필요성을 논하지 말고 방향의 정확성을 고민해야 해. 너의 발톱이 부디, 똑같이 아픈 이웃을 향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