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지배하던 계루부의 음모에 의해 세력을 잃어가던 순나부 대가의 아들로 태어난 연개소문은 어린 시절을 매우 불우하게 보낸다.
당시 고구려의 종교인 수두교를 수련하는 선비가 되어 혹독한 훈련을 받았으며, 수나라와의 전쟁에 참전하여 을지문덕 장군이 펼쳤던 청야전술의 위력을 느끼고 또 배우기도 하지만, 고수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말갈족친구 고미를 구하려다 결국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포로가 되어 북요통에 팔려온 고창국 왕자 출신의 오족루의 도움으로 간데마리가 되고 신마리자리까지 오른 후에, 북요통의 지배자인 해씨 처려근지의 셋째딸 쥬지를 힘으로 차지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종살이를 하며 고통을 겪은 것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 연태조가 보낸 도수류의 고도의 전략 때문임을 알게 된다. 권력을 쥐고 있던 계루부에서 연개소문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 그를 일부러 변방의 종으로 지내게 하여 계루부가 찾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당시 순나부에는 욕살이 다스리는 다섯 개의 큰 성이 있었는데, 도수류, 오족루, 거믈치, 고미 등의 도움을 받게 된 연개소문은 외가인 염주성의 대걸중상(후에 발해를 세우는 대조영의 아버지)의 군사적 지원으로 네 개의 큰 성을 차지하는 실력자로 성장한다.
고수전쟁 당시 큰 공을 세웠지만 여전히 수나라가 위협하는 상황에서 대왕의 동생인 고건무와 권력다툼을 벌여야했던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분열을 피하기 위해 정계에서 은퇴하고 만다. 이로 인해 그의 부하였던 양덕은 오골성을 빼앗기고 안시성으로 쫓겨 가는데 그의 아들 양만춘에게 안시성만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하지만 안시성마저 빼앗으려는 우씨 집안의 공격을 받으며 힘겹게 버티던 그는 선비훈련을 같이 받았던 연개소문과 은퇴한 을지문덕의 대리인인 추정국의 도움을 받아 안시성을 방어하고 오히려 적이었던 우보를 죽인다.
이 이후 연개소문과 양만춘은 연합하여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되살리고 중앙집권화를 시도하는 왕권주의자의 세력에 맞서게 된다. 하지만 어렵게 중앙에 진출한 연개소문은 정적인 고연무, 고정무의 견제를 받으며 제대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 소꿉 동무였으며 대대로 고연무의 아내가 되어 있는 소희의 도움으로 힘겹게 순나부 대가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대가가 되었지만 그의 정치적 입지는 매우 약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대왕인 고건무가 당나라에 굴복하여 왕세자를 조공사절로 보내는 등 점점 그들의 조공국으로 전락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다가 고구려의 명예와 고구려무사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영류대왕을 죽이고 쿠테타에 성공한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절대적 권력을 쥐게 되자 그에 대항하는 지방의 호족들이 많아 그들과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친구 양만춘도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가 이렇게 분열을 일으키자 당나라 이세민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한다.
당나라가 침공하자 연개소문과 양만춘은 곧바로 화해하고 당나라의 침공에 대한 전략을 짠다. 그들은 당나라군을 추정국이 지키는 오골성과 양만춘이 지키는 안시성으로 유인하여 그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그 사이 연개소문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만리장성 너머 오늘날 북경지역까지 공격하여 보급로를 끊고 적의 후방을 친다. 한편 수군의 해라장은 장량이 이끄는 당나라 수군을 비사성 근처에서 크게 이긴다.
수많은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당나라 이세민은 자신의 배후가 위태롭자 후퇴를 명령한다. 그러자 싸움에서 이기면 그 기념으로 적장의 눈을 맞혔던 양만춘은 당태종에게도 활을 쏘아 그의 눈을 맞혀 이세민은 다급하게 퇴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길도 이미 연개소문에 의해 다 차단되었다. 크게 두려움을 느낀 이세민은 진흙탕길인 요택으로 도망갔지만 연개소문의 추격을 받고 대부분의 군사를 잃고 겨우 목숨만 건져 당나라로 돌아간다. 이후 이세민은 화살독이 올라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자식들에게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