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것인지 그 필체를 알아볼 수 없는 글이 쓰인 종이는 뉴턴과의 대화를 적어놓은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휘갈겨 쓴 필체로 잘 읽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으나, 읽는 사람(에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던지, 마이는 몇몇 부분에 노란색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놓았다. 종이의 윗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83세.‘ 그’이후, 그의상태는나아졌으며, 두뇌회전은물론기억력도 좋아지게 되었다…….
조금 더 아랫부분에는 아이작 뉴턴이 지인들에게 한 듯한 말이 적혀있었다.
……그것은 창조주의 힘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모든 별, 즉 태양과 달을 포함한 모든 행성들은 물론 이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혼합적 요소들?흙과 물, 그리고 돌과 c?을 모았다…….
“전형적인 뉴턴이로군.”
에벤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전형적인 고전 연금술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모든 것들, 즉 돌멩이와 물, 흙, 심지어는 태양까지. 하긴, 이 모든 것들의 구성 요소는 기본적으로 같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이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다르게 조합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약 문장의 첫 부분에 나타난 것처럼 당시 뉴턴의 나이가 83세였다면, 이 글은 존 콘듀이트(John Conduitt)가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뉴턴의 조카딸과 결혼을 했으며, 후에는 뉴턴의 뒤를 이어 왕립 조폐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 p.158
"뉴턴은 이전 시대의 연금술사들보다도 훨씬 고집스럽고 주의 깊은 관찰자였으며,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기까지 했다."
에벤은 문득 어디선가 이러한 메모를 본 것을 기억해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뉴턴은 아주 끈기 있고 참을성 있는 과학자였다.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반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재실험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뉴턴이었다. 그는 재시도한 실험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면, 다시 반년이라는 시간을 더 투자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바로 그러한 점이 뉴턴을 천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결코 포기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이가 표현했듯, 그는 필요 이상으로 까다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시험관 안에 든 물질에 대해서도 10분의 1그램까지 통제할 정도로 실험에 정확성을 기하는 사람이었으며, 열을 가할 때도 정확한 온도와 그 시간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최대한의 정확성을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연금술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로 지켜져야 한다!"
그 당시 연금술과 이에 관련된 모든 실험은 금기 사항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연금술이라는 것은 마술사의 장난 정도로 생각되었으며, 한마디로 말해서 연금술을 행하는 자는 신성모독자나 다름없이 취급되었다. 하지만 뉴턴은 자신의 연금술 실험을 비밀리에 행했으며, 이러한 점은 뉴턴의 여러 면 중에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 p.160
그는 다시 자신의 논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논문을 책으로 펴낸 그 이름 없는 외국 출판사는 그리 전문적인 출판사는 아닌 듯했다. 에벤은 책장을 넘기다 뉴턴이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에게 보낸 편지를 발췌한 곳에 눈길을 멈추었다. 뉴턴은 그 편지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더 이상 적분학에 관해 설명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숨겨서 표현하고자 합니다.
●6accdae13eff7i319n404qrr4s8t12vx.●▼
조금의 편집증과 함께 의심이 많은 뉴턴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동시에, 보여줄 것은 더 있지만, 암호로 숨겨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뉴턴의 도도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경쟁 상대였기에, 뉴턴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연구 결과를 훔쳐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에벤은 바로 이 대목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암호와 암호 해독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총동원했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뉴턴의 암호를 풀어내려고 노력했으나, 그 결과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문득 에벤은 바로 이 부분이 마이가 필요로 했던 부분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대목에 마이가 메시지를 남겨두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그렇지 않다면, 책의 어느 귀퉁이에 그녀의 메모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이 책을 가져가 자신의 동료들에게 보여준다면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p.246
에벤은 한숨을 쉬며, 책을 치우고 네 장의 종이들을 다시 늘어놓았다. 그는 이제 무언가 정리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흰 종이 하나를 꺼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슴 것은
1) 이 네 장의 문서가 17세기 후반에 작성된 것이라는 점. 아마도 1688~1689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임. 문장은 아이작 뉴턴에 의해 쓰여졌음. 그의 필체가 분명해 보임.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위조의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음. 복사본도 아님.
2) 네 장의 종이 크기는 약 17~18센티미터의 길이와 14~15센티미터의 넓이임. 각각 조금씩 다른 종이의 크기는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음. 당시의 종이 크기는 오늘날처럼 자로 잰 듯 정확하지 않으며, 종이의 표면 재질 또한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종이보다 훨씬 거침.
3) 세 장의 종이는 그 배열 순서를 알아냈음. 하지만 네 번째 종이는 가장 처음에 놓아도 가능하고, 가장 끝에 놓아도 가능하기에 배열 순서에 혼동이 느껴짐. 이유는, 네 번째 종이의 문장은 그 시작과 끝맺음을 암호를 사용했기 때문임(그 암호는 아직 해독하지 못했음). 따라서 이론상으로 볼 때, 이 네 번째 종이는 문서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고, 또 동시에 끝맺음이라고 볼 수도 있음. 문서의 중앙에 위치하는 다른 세 장의 종이 또한 그 시작과 끝맺음이 암호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그 이유임(역시 해독하지 못했음).
4) 문장은 대부분이 연금술의 공식으로 이루어져 있음. 그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함(연금술은 내 전공도 아님). 하지만 많은 부분이 암호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그 공식들은 뉴턴에게 있어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임.
5) 문서 중 두 곳에서 부언 설명을 해놓은 곳이 보임. 이 부분은 전체 문서에서 일률적으로 보이는 필체와는 다른 필체임. --- p.280
에벤의 주머니 속에는 우편함 열쇠가 얼른 자신에게도 임무를 맡겨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조용히 앉아, 다시 마이의 기록을 펼쳐 들었다. 수많은 페이지에 걸쳐 특별한 단어들의 풀이와 의미들이 적혀 있었다.
"프리마 마테리아" ― 연금철학에서 모든 물질에 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신성한 혼령. 이것은 변환을 통해 불활동성 금속에서 자유롭게 해주어야 함.
와우! 에벤은 마이의 노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화 조건" ― 어떤 물질의 산화 조건은 그 물질 속에서 반응이 가능한 전자의 개수와 관련이 있음. 화학적 반응에서 원자가 전자를 만나는 점이라고 볼 수도 있음.
분명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마이는 뉴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이 분야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금철학과 관련된 부분만이 아니라 화학, 물리학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 외에 마이가 선택한 다른 용어들은 이전 단어들과 비교하여 신비철학과 더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Die Chymische Hochzeit Christiani Rosenkreutz)』" ― 이 책은 신학자인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에 의해 쓰여졌다. 그는 로젠크로이츠 단체의 바탕을 이룩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일컬어진다. 이 책은 결혼식장에 참석한 하객들이 신비로운 시험에 들게 되었고, 그중 몇몇은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펠리컨" ― 장미, 십자가와 더불어 혈맹 집단이나 비밀 집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펠리컨은 고대 기독교의 상징으로서 피닉스처럼(예수의 부활?)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메이슨 단체에서는 펠리컨의 피가 그들의 시도하는 비밀 작업, 즉 무지의 종속 상태에서 지혜의 자유 상태로 가는 인간의 ‘부활’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고 여기고 있다.
--- p.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