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지 않겠어?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
그녀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말해준 게 얼마 만인지. 정확히 말하면 아름답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귀엽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아름답다는 말은……. 클라우디아 쉬퍼, 신디 크로퍼드, 마돈나, 나오미 캠벨 같은 여자들이 아름다운 거지……. 나, 에리카 뮐러가? -14쪽
“눈에 보이는 연관성은 찾을 수 없는데요.” 페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외모가 비슷한 것도 아니고, 이력에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여자들을 한데 묶을 만한 관련성은 아무것도 없어요. 한 명은 유부녀, 한 명은 이혼녀, 한 명은 약혼한 상태였던 데다 나이, 키, 체격, 생김새, 머리카락 색깔, 눈 색깔, 생활환경, 습관 등도 다 다르니……. 아니, 눈 씻고 봐도 비슷한 데를 찾을 수 없어요! 동기가 뭐든 간에 범인은 그걸 우리에게 알려 줄 생각이 없는 겁니다. 자기 패를 쉽게 내보이기 싫은 거겠죠.”
율리아는 페터 곁에 서서 생각에 잠긴 얼굴로 피살자들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발견 당시 모두 옷을 입고 있었어요. 몸 여기저기에 혈종이 나 있었지만 성폭행의 흔적은 없었고요. 하지만 몸은 씻겨 있었죠. 이 자세는 뭘 의미하는 걸까요?” -75쪽
프랑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 여자가 대문으로 걸어 나왔다. 키는 율리아보다 약간 작았고 찰랑이는 밤색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왔으며, 어두운색 눈은 얼음이라도 녹여버릴 듯 이글거렸다. 초록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프랑크의 놀란 눈빛을 의식한 양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프랑크는 그녀가 30대 초중반 정도 됐을 거라 추측했다. 나딘도 아주 예쁘지만 그 여자에게서는 뭔가 특별한 분위기가 풍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과 같은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191쪽
“자, 이제 내 차례야.” 자네트는 이렇게 말하고는 스카프와 수갑을 풀고 혀로 입술을 적셨다.
자네트는 똑바로 누워 양팔을 침대의 철봉으로부터 불과 몇 센티미터 안 떨어진 지점까지 뻗은 뒤, 두 다리를 벌렸다. 그녀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차가운 수갑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고, 두 눈에는 스카프가 묶였다. 배가, 가슴이, 허벅지 사이가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상대방 고문자에게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지는 그 시간이 어서 시작되기만을 바랐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오직 상대방의 손길을 느끼는 것. 그것은 그녀를 금세, 또 점차 빠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절정에 도달하게끔 만들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자네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고, 흐릿한 촛불의 불빛 속에서 그녀의 도톰한 빨간 입술이 반짝 빛났다.
-505쪽
“어디 마음대로들 써보라고 해.” 그는 율리아를 올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그럼 자네는 정말 아니라 이거지?”
“제가 언론사들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상관이 있을 수도 있지. 그나저나 심문은 언제 시작할 건가?”
“약속한 대로 8시 정각에요.”
율리아는 씩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알았다. 그녀가 쿤에게 정보를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베르거가 알고 있다는 것을. 베르거는 이따금 성난 황소처럼 행동할 때가 있지만, 이럴 때보면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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