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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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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김종일 저 / 윤태호 원작 | 피카디리 | 2010년 07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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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398g | 128*188*30mm
ISBN13 9788994352022
ISBN10 899435202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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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돌연 말을 멈춘 좌중이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무심한 척 내뱉고 난 해국은 눈길을 슬쩍 올려 좌중의 반응을 살폈다. 침묵 그리고 경직.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커다란 침목이 술상 위에 내려앉은 듯 아무도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 지망생이 얼어붙는 순간은 두 가지 경우였다. 준비해둔 매뉴얼에 없는 엉뚱한 질문을 면접관이 던졌거나, 준비해온 연기가 아닌 엉뚱한 연기를 주문했거나. 이 경우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 해당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름이 돋았다.
“술 좀 더 가져 오겠습니다.”
해국은 짐짓 흐트러진 척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때까지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히 느꼈다.
자신의 뒤통수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들을…….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을…….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본문 중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짐을 풀던 민욱은 미간부터 구겼다. 성가셨다. 구질구질한 부둣가에서 끼룩대는 도둑갈매기 울음소리도 성가셨고, 짐을 채 풀기도 전에 이 지역의 유지입네 어쩌네 하며 엉겨 붙는 똥파리들도 성가셨고, 이 오지까지 내려온 마당에도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 휴대전화도 마냥 성가시기만 했다.
받어, 말어?
잠시 고민하던 민욱은 호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마지못해 꺼내어 들었다. 낯익지만 전화번호부에 저장해 두지는 않은 번호였다. 전화를 받는 기분도 영 마뜩찮았다.
― 안녕하십니까, 박민욱 검사님.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역시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 류해국 씨.”
상대를 알아차리자마자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받지 말았어야 했다.
이 인간, 수신거부번호로 등록해놓든가 해야지. 안녕하시냐고? 어이, 류해국, 당신이 나라면 안녕할 수 있을까?
― 옮기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민욱은 말에 뼈를 심어 전화기 너머로 던졌다.
“류 선생 덕분에 물 맑고 공기 좋은 데서 일하게 됐시다.”
― 유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치밀었다.
유감이라고? 그래, 유감이겠지. 아예 검사 딱지 떼게 하고 싶었는데 시골로 좌천밖에 못 시켜서, 대단히 유감이겠지. 안 그래, 잘난 류해국 씨?
차마 발음되지 못한 그 말들이 목젖을 간질였다.
“근데 듣자 하니 류 선생도 상처뿐인 영광이던데…… 아뇨?”
한 방 먹였다. 민욱은 창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며 쓴웃음을 지었다.
“뭐, 직장도 잃고, 사모님이랑도 그렇게 되시고……. 오히려 내가 유감이요.”
또 한 방 먹였다 싶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해국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무슨 부탁. 이 상황에 당신이 나한테 할 부탁이 있나?
민욱은 전화기를 벽에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이를 앙다물었다.
― 한마디만 해 주시겠습니까?
해국은 핸즈프리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 해국은 그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다. 다른 이도 아닌, 지루한 개싸움의 상대편 담당 검사였던 민욱에게서. 그래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물었다. 그러나 한참 만에 돌아온 대답은 냉소적이었다.
― 잘못이, 잘못 아닌 세상에, 최선의 선택이 최악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 사는 게 잘못 아뇨. 당신이나 나나……. --- 본문 중에서

“이장…… 그놈은 도대체 뭘까요?”
- 뭐든 간에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니까?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알기나 하나? 토착민을 이길 공권력은 없다 이거요. 그러니 당신을 도와줄 사람도 없는 거요. 그러니 일단 거기서 나와!
“아버지는 누구였을까요? 정말 알고 싶어요. 대체 아버지가 이장과 어떤 관계였는지 알고 싶다고요.”
-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는데…… 거기서 나와!
해국은 재킷 주머니에 넣어둔 회칼을 어루만졌다. 사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이제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모든 게 이대로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칼은 그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 준비한 물건이었다.
“만약 이장이 내 목숨도 거두려 한다면 자기 목숨도 판 위에 올려놔야 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해국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여보세요? 류해국! 야! 야!”
민욱은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음성 안내가 흘러나왔다. 그는 전화기를 책상 위에 내동댕이쳤다.
아아, 저 구제불능에 꼴통 새끼!

해국은 풀숲을 밝고 언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 마을의 핵심을 내려다보았다. 쳀장의 집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그래, 이제 나는 핵심으로 다가선다.
--- 본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이곳, 이 사람들 도대체 무엇인가?


한 번 수틀리면 세상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늑대 같은 근성을 가진 남자 류해국.
사소한 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단절된 채 살아왔던 아버지의 부고가 들려온다.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30년간 은폐되었던 한 시골마을에 발을 디디게 된 해국.
아버지가 가족까지 버리고 집착했던 마을의 사람들은 이방인 해국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다. 해국은 그들의 반응에 더러운 기분을 맛보면서도 마을의 이장 천용덕이 내뿜는 칼날 같은 예리함에 본능적인 공포심을 느낀다.

대체 이 마을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인가? 아버지는 대체 왜 이 마을에서 죽어야 했는가? 이 마을 사람들이 내게 숨기고자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영영 퇴화되도록 조용히 잠재우려 했던 해국의 늑대 근성이 되살아난다. 이들이 숨기고 있는 것을 밝혀낼 때까지 이끼처럼 이 마을에 들러붙어 살겠노라 결심하는 해국.

하지만… 오히려 해국의 등에 마을 사람들의 축축하고 음습한 시선이 이끼처럼 들러붙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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