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허우잉은 안후이 성 작은 읍의 평범한 상점 점원의 딸로 태어나, 사회주의 중국의 탄생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대학 교육을 받고 문학연구소의 연구원이 된다. 이러한 수혜로 말미암아 그녀는 자신이 '당의 보호 아래 자랐으며', '유일하게 의지할 건 집단'이라는 믿음을 갖고 생활한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당의 지시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적인 대학 은사를 '나는 나의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며 공개석상에서 비판할 수 있었으며, 조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오랫동안 남편과 아이와 떨어져 독신 아닌 독신생활을 감수할 수 있었다.
문화대혁명이 고조에 달한 1968년, 직장 혁명 지도팀의 일원인 다이허우잉은 검은 시인으로 비판을 받던 원제를 40일 동안 조사하게 된다. 그 40일 동안 원제는 사상활동을 자백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출신 내력, 역사적인 오류, 가정과 아이들에 대한 내력까지 모두 스스럼없이 자백했다. 그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될 무렵 다이허우잉은 모종의 결론을 가지게 된다.
“그때 나는 그 명성이 자자한 시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어. 그는 우리처럼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던 거야!”
그 뒤 4.12 장춘차오 사전이 터지면서 혁명적 인간이었던 다이허우잉은 ‘반혁명 포격수’로 전락하게 되었고 원제와 다이허우잉의 가정에 두 가지 사건이 터졌다. 하나는 원제의 아내가 자살을 하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이허우잉의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정치 일선에서 밀려난 둘은 간부학교에 들어가 생산대장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때 둘은 다시 재회한다. 직장별로 사상 검증이 다시 일어나자 원제는 다이허우잉에게 찾아가 자신의 사상 정리를 도와달라고 요청을 한다.
“책들을 씌어진 연대별로 책상 위에 늘어놓은 뒤, 처음부터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어. 그 가운데 몇 권은 예전에 읽었던 책이었지만, 세월에 많이 흐른 데다가 너무 띄엄띄엄 읽었던 관계로 기억이 흐릿했어. 이틀 밤, 그리고 하루 낮에 걸쳐 그의 작품 전체를 다 읽고 마지막 책을 덮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한 완벽한 인물의 형상 외에는 아무 인상도 남아 있지 않았어. 그는 바로 시인 자신이었어. 그날 나는 그의 ‘전부’를 보고 만 거야.”
그의 작품에 매료된 다이허우잉은 원제에 대한 모든 의심과 우려가 말끔히 사라졌고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또한 원제는 이미 다이허우잉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둘의 사랑은 단 네 마디로 이루어졌다.
“결정했소?” 그가 물었어. “결정했어요.” 내 대답이었어.
“마음 변하면 안 돼요.” 그가 말했어. “변하지 않을 거예요.” 내 대답이었어.”
하지만 둘의 사랑은 허우잉이 그렇게 믿어마지 않았던 집단에 의해, 그것도 '나쁜 사람'이 아닌, 친구와 동지를 포함하는 이들에 의해 거절되었다. 둘이 결혼을 신청하게 되자 당은 반혁명분자의 결혼은 안 된다며 둘의 결별을 요구하게 된다. 당과 사랑 사이에서 무수한 방황을 하게 된 둘은 결국 결별을 하게 되고 시인 원제는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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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비웃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지. 예를 들어 어떤 군인선전대 대원이 갑자기 실실 웃으면서 내게 고양이 한 마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
"당신 눈에는 저 고양이가 그리 늙어보이지 않겠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수재'가 맞장구를 치더군.
"그 시인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해. 그래서 어제 내가 그에게 말해줬지. 앞으로는 어린 고양이를 품을 필요가 없겠다고."
예를 더 들어볼까? 나는 분명히 손목시계를 바꾼 적이 없는데 어떤 부인이 무슨 새로운 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말했어.
"어머, 또 손목시계를 바꿨군요!"
게다가 그녀는 '또'라는 단어를 일부러 이상한 어조로 발음하는 거야. 그러고는 주위를 쓱 한 번 둘러봤어. 그때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는 다른 몇 쌍의 눈들을 느낄 수 있었어.
--- pp 73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어. 평소의 내 발랄하고 대담한 성격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왜 무턱대고 쳐들어왔을까 후회하기까지 했어. 무든 게 이렇게 결정된 걸까? 방안에 있는 것들을 찬찬히 살피는데, 문득 그의 죽은 아내의 그림자가 엄습해오는 것 같아 움찔 전율을 느꼈지. 경계심과 두려움이 갑자기 마음을 뒤덮었고 나는 속으로 스스로를 다잡았어. 냉정해야 해. 조금만 앉아 있다. 정말 조금만 앉아 있다 가는 거야. 아무 일없이 가버리는 거야. 그때, 그가 먼저 입을 열었어.
"다 봤소?"
"다 봤어요"
"묻고 싶은 말은?"
"다 이해했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겠소?"
"네."
"내가 그 시들을 어떻게 썼는지 말해도 되겠소?"
"그러세요."
간단한 대화가 우리의 생각을 소통시켜주었어. 그는 내게 자신의 창작의 역정을 설명했지. 그건 그의 삶 전부이기도 했어. 그가 너무나 열정적으로, 또한 너무나 섬세하게 이야기해서 그의 말을 끊고 싶지 않았고, 끊을 수도 없었어. 그는 이미 자신의 추억 속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으니까. 그는 내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듯했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벌써 나를 자신의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는 아내와의 사랑도 이야기했지. 그녀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여자였대. 그는 노래를 듣자마자 그녀에게 흠뻑 빠져버렸다는 거야. 그리고 반드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대. 그때 자신에게 한 맹세도 들려주었지. "만약 이 아가씨를 붙잡지 못하면 그때부터 내 이름과 성을 거꾸로 쓰겠노라!"
다른 맹세도 있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고 말리다." 이 말을 하고서 그는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켰어. 그의 눈썹이 떨리고 입가의 근육이 당겨지더니 뺨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지... 나는 이해할수 있었어. 그는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현재를 이야기한 거야. 그의 머릿속에서 죽은 아내와 눈앞의 나는 이미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어. 나는 어땠냐고?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어. 방비해둔 모든 게 확 풀어져 버렸지. 너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친구야, 내가 얼마나 그런 마음을 사랑하는지!
--- pp 54~56
--- 나는 지금까지 희극적인 형식으로 비극적인 역할을 연기해왔다. 즉, 이미 사상의 자유를 박탈당하고도 스스로 가장 자유롭다고 여기는 인물, 정신의 족쇄를 목걸이로 걸고 우쭐대는 인물, 그리고 인생의 반 이상을 살고도 아직 자신을 찾지 못한 인물을. (...)
인정, 인간성, 인도주의는 바로 당시 지식계 보편적으로 관심을 갖던 문제였다. 악몽 속에서 놀라 깨어난 지식인들은 인간성을 왜곡하고 인정과 인도를 저버린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깊이 절감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이 인도주의의 회귀를 부르짖었다. 그것을 어떤 이는 이론적인 언어로 서술하였고, 또 어떤 이는 문예작품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곧 문화대혁명 종결 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문예작품의 형식으로 인도주의 정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사람아 아, 사람아!>는 신선한 예술적 표현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시인의 죽음>이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표현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라면, <사람아 아, 사람아!>는 의식의 흐름이나 꿈의 상징 같은 모더니즘의 기법을 적지 않게 받아들였다. 게다가 후기에서 그녀는 유행하던 리얼리즘 문학관념에 대한 반발을 선언했다.
--- 엄밀히 말해 예술 창작의 최고의 임무는 현실을 진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작가 및 예술가의 인식, 태도, 그리고 감정을 진실하면서도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진실은 삶에 대한 정밀한 묘사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그런 인식과 태도에 대한 정확하면서도 생동감 잇는 표현이어야 한다. 이것은 개념을 일부러 돌려 말하는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예술 창작에서 작가의 주관적 세계의 중요한 의의를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예술적 수단을 동원해 작가의 주관적 세계를 표현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 pp 187~189 우중제의 추모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