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우리가 이 호텔로 돌아오게 될까? 그때도 여전히 우리 둘이 붙어 다니고 있을까?” 애셔가 물었다.
그때 당신이 11살짜리 내 머리에 우리 할아버지의 나치 P-38 권총을 들이대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면서, 애셔와 내가 평생 단짝 친구로 남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날 밤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마 그럴걸.” 내가 그렇게 대꾸하고 나서 우린 산책로 옆으로 발을 흔들거리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다음엔 사실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엄청나게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냥 아이들이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짓만 했다.
아마도 그건 오직 아이들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황홀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수백 명의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분명 그들 중 누구도 애셔와 나처럼 황홀한 느낌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 빛나지 않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셔는 확실히 그렇게 돼 버렸다. ---pp.188-189
“당신은 누구죠?” 난 침착하면서 멋지게 보가트처럼 말하려고 애를 썼다.
“내 이름은 로렌 로즈라고 해요. 당신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게요.”
그녀의 이름은 로렌, 금발에 키가 컸다.
로렌.
내가 운명의 징조 같은 걸 믿는 인간이었다면, 살짝 소스라쳤을 것이다. 그 소녀는 실제로 어린 로렌 바콜처럼 생겼으니까. 로렌 바콜 역시 고양이 상인데다 전성기에는 뇌쇄적으로 아름다워서 그녀의 미모에 저항할 자 없었다. 그리고 흑백 할리우드 랜드에서 보가트가 로렌의 마음을 수 없이 정복하는 걸 지켜본 후라, 나는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느낌을 받았다. 이 소녀가 나의 첫 키스 상대가 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선포(목표를 정하고)하고, 마치 토끼를 쫓는 사냥개처럼 자동 추적 모드에 들어갔다.
“무슨 좋은 소식?”나는 흑백 영화에 나오는 보가트처럼 차분하면서도, 점잖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써서 물었다. 마치 우리가 빅 슬립에 나온 것처럼.
“좋은 소식이라면 내게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어요.”
“아, 그거.”
그녀의 말에 어떻게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녀가 전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는 순간 분위기는 다 깨졌지만, 난 이미 목표를 정해버렸다. 그리고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아무리 많은 악당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도, 보가트가 항상 바콜을 차지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pp.191-192
“내가 지금 아무에게도 말 못할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네가 날 위해 기도해준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이 날거야. 뭣하면 거짓말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냥 날 위해 계속 기도해주겠다고 말하면, 이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도 단 한 사람은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날 응원하고 있다는 걸 내가 알 테니까.”내가 말했다.
로렌은 이 자식이 또 무슨 사기를 치나, 이런 표정으로 날 보다가 (더 이상 팜므 파탈 고양이 상을 짓지 않고) 말했다.
“좋아. 널 위해 기도할게. 매일. 그리고 난 거짓말하지 않아. 절대로.”
난 피식 웃고 로렌이 마음을 바꾸기 전에 혹은 그녀가 미쳤다는 확신이 드는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얼른 그녀 곁을 떠나버렸다.
로렌이 날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도움이 많이 됐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그것도 약발이 떨어졌다. 그걸 내가 아는 이유는 또 다시 정말 절실하게 애셔 빌을 죽이고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러자 로렌이 기도를 중단했는지 궁금해졌고, 애셔를 죽이고 싶은 내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로렌이 분명 기도를 중단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pp.225-226
당신이 아는 가장 사악한 인간을 한 번 떠올려보라.
히틀러까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히틀러가 방에서 혼자 자위하는 상상을 하는 거다.
갑자기, 그는 더 이상 그렇게 사악하고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히틀러가 갑자기 좀 웃기면서 무력하고 다치기 쉽고 심지어 안쓰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보건 선생님이 인간은 모두 자위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인간은 성적 욕망의 노예일 거란 짐작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런 맥락에서 모든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만하다.
어쩌면 한 번씩 우리의 적이 자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기만 해도, 세상이 훨씬 더 나은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pp.280-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