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달빛 속에서 하이빔을 켠 채로 무스탕은 시속 100킬로미터쯤으로 릿지 로드를 달려갔다. 양쪽으로 길을 에워싼 나무들이 바람 속에서 몸을 뒤틀며 춤을 추었다. 조지 스토브가 그 휑한 두 눈에 미소를 머금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내 손을 놓아주고 운전에 집중했다. 고등학교 때 읽은 『드라큘라』의 한구절이 내 머리 속에서 마치 종소리처럼 울렸다. '죽은 자는 과속을 한다'라는.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게 해선 안돼.'
이 말도 머릿속에서 종소리처럼 울렸다.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눈치채게 해선 안돼, 절대로 안돼, 안돼.'
그 늙은이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가 궁금했다. 형의 집에 도착했을까? 아니면 그 늙은이도 처음부터 한패였을까? 한패여서 그 낡은 낫지를 타고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을까? 운전대 위로 등을 구부린 채로 연방 사타구니를 주무르고 있을까? 그 늙은이도 죽은 자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드라쿨라』를 쓴 브램 스토커에 의할 것 같으면, 죽은 자는 과속을 한다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늙은이는 75킬로미터 이상은 한 눈금도 안 넘기지 않았던가?
--- p.46~47
장례식이 끝나고 조문객들이 다 돌아간 후에 나는 어머니가 인생의 마지막 몇년을 보냈던 핼로우의 그 작은 집으로 갔다. 이제까지는 이 세상 천지에 진 파커와 앨런 파커 단 둘이었으나 이제는 나만이 남은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유퓸들을 정리했다. 처리해야 할 서류 몇 가지는 우선 뒤로 미뤄놓고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상자에 챙겨 넣고 자선단체 같은데에 기증 할 만한 것들을 또 따로 모았다. 일이 다 끝나가 무렵에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어머니의 침대밑을 살펴보았다.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막연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던 그 뱃지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p.112
어머니와 내가 스릴 빌리지에서 줄을 서 있던 광경을 생각해 보았다. 여름 원피스의 겨드랑이께가 땀에 흥건히 젖은 뚱뚱한 여자 진 파커와 그 여자의 어린 아들 앨런 파커의 모습을. 어머니는 그 줄에 서서 기다리는 게 싫다고 했다. 스토브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르고 조르고 또 졸랐다. 스토브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때렸고, 그러나 결국엔 같이 그 줄에 서 주었다.
'어머니를 데리고 가세요.'
첫째 집의 불빛이 무스탕을 향해 다가오는 걸 보면서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가 꺽꺽하고 내 귀에도 낯설고 매우 컸다.
'엄마, 엄마를 데리고 가세요. 난 안돼요.'
--- p.72-73
어머니는 마흔 여덟 살. 그러나 나는 스물 한 살. 그야말로 내 인생은 앞날이 구만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걸 어찌 따질 수 있을 것인가?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
--- p.71
대개는 자식이 부모보다 더 오래 사는게 정상이 아니겠는가? 그 개자식이 나를 겁주려고 했지만, 죄의식을 뒤집어씌우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개자식의 말을 곧이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았던가?
'넌 지금 변명을 하고 있는 거야. 죄책감을 모면할 궁리를 하고 있는 거라구. 내가 생각하는 게 옳기는 옳아.....그러나 선택을 하라고 강요받았을 때, 넌 어머니를 선택했던 거야. 빠져나갈 생각은 말아-- 넌 어머니를 선택했어.'
--- p.105
'나는 스릴 빌리지에서 총알차를 탔다.'라고 씌어있는 먼지 앉은 뱃지. 나는 그것을 손바닥에 놓고 꼭 쥐었다. 핀이 살에 박혔지만 나는 더욱 힘을 주었다. 그 아픔이 오히려 상쾌했다. 손바닥을 다시 폈을 때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해져서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고 서로 겹쳐져 보였다. 마치 안경을 쓰지 않고서 3차원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제 만족하니?'
나는 텅빈 방을 보고 물었다.
'이제 됐어?'
물론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왜 그렇게 속을 태웠던 거야?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지?'
--- p.113
나는 선택을 했다. 첫번째 집의 불빛이 다가오는 걸 보자 거의 망설이지도 않고 어머니의 생명을 팔아버렸다. 이해받을 수 있을 만한 선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 이야기를 알아서는 안된다. 어머니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일 것이고, 아니 어쩌면 정말로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라서 내가 이 얘기를 숨기도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