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 유타카는 4월의 어느날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사실은 그가 죽기 며칠전, 이 책의 후기를 적고 있었다... 히가시 유타카와 나, 그리고 아기는 아직 살아있다. 5월 12일은 히가시의 생일이다.
올해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 p.288
태양 빛은 밝고 따뜻하기도 하지만, 때론 인정사정없이 내려쪼여 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과, 마침내 주위의 별들을 모두 태워 없애고 빛을 잃은 천체가 되어 생애를 마치는 태양의 운명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난 나지막하게 '타케하루야!'하고 불러 보며 배를 어루만졌다. 눈을 감으니, 햇빛의 빛줄기처럼 똑바로 서 있는 사내아이의 등이 보이는 듯했다.
--- p.199
'놀라서 침대에서 뒤집어질 뻔했는데, 놀랍게도 <절망>이라는 제목이라는 거야. 깜짝 놀라서 '절망이에요?' 하고 물었더니, 당황하면서, 앗, 착각했어. <이유없는 반항>이에요'하더라구 글쎄.' ~
'그리고 약이라고 해야할까, 암에 잘 듣는 보조영양제라는 걸 산더미처럼 가져왔어. 프로폴리스, 인삼, 송근탕,비파차
--- p. 64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있던 우리 집은 히가시 유타카와 나와 타케하루의 3인 가족-, 한 방주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아 신천지로 향한다는 이미지였다. 피로 맺어지지도 않았고, 혼인이라는 제도로 보증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튼튼하고 질긴 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서로의 목숨때문에 서로가 필요하다는 오직 한가지 근거에 의해 세 사람은 맺어져 있는 것이다.
--- p.256
나는 5년 전, 『풀 하우스』라는 소설에서 "내 안에서는 이미 아득한 옛날에 가족은 종지부를 찍어 버렸다"고 썼다. 내가 맨 처음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시라도 빨리 가족에게서 해방되고 싶다는 소원을 품어 왔다. 열여섯 살 때 고등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당하고, <도쿄 키드 브라더스>에 입단한 것을 계기로 가족에게서 멀어지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입원했다는 말을 듣고도 문병을 가지 않았고, 전화로 대화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하지만 열여덟 살 때 글을 쓰게 된 나는 내 가족의 모습을 마구 비틀어 놓거나 꺾어 구부려뜨려서, 희곡이나 소설에 되풀이해 가며 등장시켰다. 왜 그랬는가? 내 마음속에서 가족은 완료돼 있는 것이 아니라,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족으로 인해 상처 입은 영혼으로, 상처 받은 가족을 사랑하며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가족의 붕괴를 테마로 하면서도 항상 가족 재생의 이미지를 가슴에 품어 왔다. 혹시나 작가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 가족 재생 이야기의 '핵'으로서 아기를 낳아 보자고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러해 동안 소식을 끊고 지내던 어머니가 매주 수요일마다 병실을 찾아와서는 음식을 만들어 주러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하고, 아버지도 나와 아기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 보고 있던 우리 집은 히가시 유타카와 나와 타케하루의 3인 가족 - . 한 방주(方舟)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아 신천지로 향한다는 이미지였다. 피로 맺어져 있지도 않았고, 혼인이라는 제도로 보증되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튼튼하고 질긴 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서로의 목숨 때문에 서로가 필요하다는 오직 한 가지 근거에 의해 세 사람은 맺어져 있는 것이다.
퇴원을 눈앞에 둔 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서, 아기의 잠든 모습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 pp.255-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