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애자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 14년
존경하는 스트라톤 선생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 글을 씁니다. 철학자 클레안테스가 공식적으로 저를 고발한 일을 선생님도 아시지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제가 “우주의 근원이자 신전인 지구”를 그 중심에서 추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제로 태양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간주하고, 지구가 자신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제 가설의 동인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그들이 공식적으로 천동설을 옹호하리라고 저에게 경고하셨지요. 예상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습니다.---p.8
스트라톤은 아리스타르코스의 눈을 한동안 깊게 들여다보다가,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가며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사실 우주 바깥에 신적인 존재를 가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모든 별이 그 자체로 신적인 존재라고 믿지 않아. 또 인간은 잠을 자는 동안 신에 관한 상상을 얻으므로, 신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리라는 에피쿠로스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네.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해. 하지만 물질의 운동과 변화를 이끄는 추진력이 있다고는 생각한다네. 이 점에서는 데메아스에게 동의하지. 아마 우연한 상태였을 초기의 세상은 불완전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내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완전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을 걸세. 나는 이 힘을 자생성이라고 부르는데, 이 힘은 자연에 내재하네. 자연 자체에 생성과 소멸, 성장과 감퇴의 기원이 있지. 이 자생성은 원인이 없고 설명할 수도 없네. 자연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네.”
“그렇다면 신은?”
아리스타르코스가 곧장 물었다.
“옛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아서, 모든 자연현상의 배후에 신이 있다고 생각했네. 번개가 큰 소리를 내며 나무를 쪼개든 천둥이 우르릉거리며 하늘을 울리든, 지진이 나든 폭풍우가 바다를 때려 물결이 수백 명을 집어삼키든, 신들이 언제나 그 모든 일에 책임이 있었지. 별과 달과 태양의 움직임도 알지 못했고, 일식과 월식은 나쁜 징조라고 믿었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현상에 자연스러운 설명이 있네. 나무마다 신이 산다고 두려워하지도 않지. 내가 세상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발생했다고, 그리고 그때 이후로 자연이 세상의 행로를 스스로 결정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신을 통해서는 이런 일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세. 나는 매일 자연이 행하는 일들을 보기 때문에, 생산력이 있는 자생성이 자연 안에 있다고 보는 거라네. 하지만 그게 신이 없다는 뜻은 아닐세!”
스트라톤이 얼른 덧붙여 말했다.
“나는 자연의 바깥이나 그 옆에 있는 신이 아니라, 자연 안에 있거나 자연과 하나인 신을 믿지.”
스트라톤이 중요한 말을 마쳤다. 세 제자는 스승 옆에서 입을 다문 채 정자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생각은 방금 다룬 철학적 문제들을 서서히 벗어났다. 그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 한가운데에 있는 자기 자신을 생각했다. ---pp.87-88
“신이 세상의 운행일세. 우리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이 있네. 그렇지 않다면 신은 불쌍한 난쟁이에 불과하지. 안 그런가?”
아리스타르코스는 깜짝 놀라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트라톤이 곧장 다시 말을 이었다.
“신의 전능함 또는 그의 도덕은 어떻게 되겠나? 신이 세상에서 악을 없애려고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는 건가? 악이 존재한다는 거야 명백하니까. 그렇다면 신은 약한 걸세. 악을 없앨 생각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신이 악한 거지. 세상에는 왜 언제나 악이 존재할까? 신은 왜 악을 없애지 않을까?”
아리스타르코스는 혼란스러웠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 그는 망설이며 물었다.
“하지만 모든 민족은 신들을 믿습니다. 신의 형태가 다양하기는 하지만요. 어제 헤카타이오스 선생님이 저승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셨지요. 사람들이 모두 틀린 걸까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살면서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신이 필요한지 그 여부는 각자 결정해야 하네. 낮에도 말했듯이, 나는 우리가 자연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에게 빈다고 해도 나는 그러지 않아. 그런데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스트라톤은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말은 자네 혼자 알고 있게. 누군가 이 말을 얼마나 쉽게 신성모독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지 자네도 알지? 내가 그리스에서 이런 방식으로 제거되는 첫 사람은 아닐 걸세.”
그런 다음 둘은 다시 침묵하며 바람과 물결에게 대화를 넘겼다. ---pp.92-93
아리스타르코스는 이 여행을 떠난 이래 지구가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느낌을 두 번째로 받았다. 인간에 의한 변화일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 정착하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여 나중에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이 되기도 했다. 또는 자연이 지구의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무엇이든 상관없이, 옛 것은 새 것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그는 스쳐가는 가벼운 바람에 몸을 떨었다.---pp.223-224
헤카타이오스와 데메아스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말을 이었다.
“스트라톤 선생님은 올림포스 신들을 믿지 않았어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바로 자연이 신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왕의 지식과 권력을 알지 못하듯이, 자연 역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처럼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는 자연의 수수께끼를 풀고, 마지막 신을 왕좌에서 끌어낼지도 모르지요.”
“친구, 자네 상상력이 다시 시작되었군.”
데메아스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우린 자연에 대해 근본적으로 지극히 적은 것만 알 뿐이야. 자네 같은 천문학자들은 천체의 위치와 하늘에서 움직이는 그들의 궤도를 결정하지. 하지만 천체의 특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얼마나 멀리 있는지, 크기가 어떤지는 알지 못해.”
“100년 전 사람들은 지구의 크기도 몰랐어. 지금은 그걸 계산해낼 방법을 알잖아.”
아리스타르코스가 대꾸했다.---pp.272-273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두자 모든 현상이 지극히 단순하게 설명되었다. 수성과 금성의 근접은 이들이 지구 궤도보다 안쪽에서 태양 주위를 회전하기 때문이었다. 천문학자들이 수백 년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며 관측한 화성의 역행 운동은 단순히 관점의 작용임이 드러났다. 목성과 토성도 역행운동을 했지만 화성만큼 크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은 이 두 행성이 화성보다 훨씬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갑자기 놀라울 만큼 잘 맞아떨어졌다.
이제 달만 남았다. 달은 새로운 세계상에 어떻게 맞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달은 모든 천체 가운데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었다. 달이 모든 천체를 덮었기 때문이다. 행성이 달 앞쪽을 지나는 모습이 관측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달은 겨우 28일 만에 하늘 전체를 통과했다. 그러니 반지름이 작은, 무척 짧은 궤도 위에서 움직이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아리스타르코스가 행한 거리 측정으로 볼 때,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웠다. 그러니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달은 분명히 지구 둘레를 회전했다. 달은 지구보다 훨씬 작으니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로써 모든 행성과 달은 항성 천구로 에워싸인 우주 체계로 수용되었다. 관측한 모든 현상이 한눈에 설명되었다. 그러나 이게 사실에 부합할까? 항성 천구에서 보이는 행성들의 영원한 길은 관점상의 혼란일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지구가 빨리 움직이며 어떤 공간을 지나간다는 게 사실일까? 아리스타르코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날이 이미 저물었다. 기름등잔 두 개가 흥분한 동시에 지친 아리스타르코스를 비추었다. 그는 잘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이 그려진 파피루스를 내려다보았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단 하루 만에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냈다.---pp.334-335
“우주의 근원이자 신전인 지구를 감히 중심에서 밀어내려는 남자를 고발해야 합니다!”
클레안테스가 소리쳤다.
이 철학자는 페리파토스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큰 소리로 한탄하며 아리스타르코스를 비난하는 불씨를 들쑤셨다.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점점 더 많은 철학자들이 아리스타르코스에게 수치스러운 주장을 철회하고 이성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그를 미쳤다고 단언하며, 존경받는 학자들의 공동체인 무세이온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우리 연구소의 훌륭한 명예를 더럽힌다!”
“그는 우리 도시의 체면을 손상시킨다!”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무세이온의 최고 수장인 왕이 대답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왕은 왕비 아르시노에와 몇몇 고위관리와 잠깐 의논한 뒤, 논쟁을 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쟁에서 아리스타르코스는 그의 가설을 진술하고, 비판가에게 맞서 스스로를 변호하시오. 아소스 출신 클레안테스가 아테네에서 올 것이오. 이 논쟁에 관심이 있는 무세이온의 철학자와
천문학자, 수학자들은 모두 참석하기 바라오.”
처음에는 부드러운 바람이었던 것이 이제 사납게 포효하는 폭풍으로 변했다.---pp.340-341
“나는 여기 참석한 티모카리스 선생님과 오래 전부터 행성들의 궤도를 기록했습니다. 밝기 변화를 추적하고 한 해와 달의 길이를 측정하고 일식과 월식떵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의 예상은 크든 작든 실제 측정과 언제나 차이가 있었지요.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러면 천구 몇 개를 더 집어넣어 천체의 운동을 더 세밀하게 조정하시오.’ 그것도 물론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체계가 더욱 기괴해집니다. 지금도 금성 천구들 중 하나는 수성과 태양의 천구들을 뚫고 지나갈 만큼 아주 커야 합니다.”
마지막 말에 청중 가운데 동요가 일었다. 학자들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아리스타르코스는 결정적인 일격을 가했다.
“모든 철학자와 신학자는 신이 불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으며, 그가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하겠습니다. 신은 왜 우주에 50개 이상의 천구를 만들었을까요? 8개면 충분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는 다시 잠깐 말을 멈추었다. 학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이 논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클레안테스처럼 우주를 생명체로 상상해보면 이 생명체는 마치 기형처럼 보입니다. 기형이라는 부적절한 예를 들어 죄송합니다만, 팔과 다리와 머리와 기타 부분들을 서로 다른 모형에서 떼어낸 듯합니다. 각자는 최상의 특성을 지녔지만 모았을 때는 서로 맞지 않습니다. 그 결과물은 인간처럼 모양이 좋은 생명체가 아니라 괴물에 가깝습니다. 생각해야 할 문제는 이것 말고도 또 있지요. 아리스토텔레스와 기존의 모든 권위자는 천체들이 모두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천구와 그 하위 천구들의 체계는 너무 심하게 과장되어, 일정한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신이 완벽한 계획에 따라 창조한 우주가 정말 그런 모습일까요?”---pp.361-362
다른 학자들도 이 비판에 동의했다. 사방에서 찬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 수학자는 동료들을 진정시키려고 팔을 들어올린 다음, 다시 아리스타르코스에게 몸을 돌렸다.
“나는 이 관점을 좀 더 설명하고, 당신이 무척 좋아하는 실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겠습니다.”
그가 왕을 올려다보자 왕은 그에게 연단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수학자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책상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이 돌을 수직으로 위로 던지면 몇 초 뒤에 내 손으로 다시 떨어집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여기서 한 번 해보지요.”
그가 돌을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
“돌멩이가 공중에 몇 초나 있었지요? 2초나 3초, 또는 4초? 정확한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3초라고 해두지요. 내 손을 떠나는 그 순간 돌은 나와, 그리고 지구와 더 이상 접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리스타르코스가 주장하는 지구의 회전과도 상관이 없어지지요. 돌멩이가 공중에 있는 시간에 지구가 동쪽으로 회전한다면, 이 돌멩이가 서쪽으로 가서 거리에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저기 있는 벽이 엄청난 속도로 돌 쪽으로 와서 서로 부딪쳐야 하지 않나요?”
학자들은 다시 흥분하여 뒤죽박죽 소리를 질렀다.
“지구가 동쪽으로 회전한다면, 폭풍이 그쪽에서 끊임없이 우리에게로 불어와서 부딪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떤 학자가 소리쳤다.
“게다가 지구는 구름이 끼어도 회전해야겠지요. 그렇다면 구름은 언제나 서쪽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구름은 대부분 동쪽으로 움직여가고, 이따금 남쪽이나 북쪽으로도 갑니다.”
다른 사람도 이의를 제기했다.
사방에서 이의가 날아오는 바람에 아리스타르코스는 전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질서 있는 토론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학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고 아리스타르코스에게 말할 기회를 줄 때까지 모두 어수선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를 욕했다.
“존경하는 친구들과 동료 여러분…….”
“옛날에는 친구였지!”
좌석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pp.368-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