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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러, 유라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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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러, 유라시아!

: 녹두 거리에서 샹젤리제 거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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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04g | 152*204*30mm
ISBN13 9788962911756
ISBN10 8962911752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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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고, 택시는 좁았다. 일단 택시에 짐을 넣고 탔다. 보이텍은 앞에 타고, 나와 일본 친구들은 뒤에 탔다. 다짜고짜 운전사는 우리를 보고 짐이 많으니까 돈을 더 내라고 했다.
‘흥, 바가지가 시작되는군.’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보이텍이 기사를 상대했다.
“웃기지 마! 이미 공항에서 돈을 지불했고, 그런 말은 들은 적도 없어. 빨리 가기나 하시지.”
“15kg이상 짐을 실으면 돈을 더 내야 한다구!”
“우린 돈을 따로 지불했어. 각자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지. 내 짐은 12kg이야. 킴! 네 짐은 몇 킬로지?”
“14kg.”
나는 순간 보이텍의 재치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 그런 멘트를 생각해 두었는지.
기사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라디오를 틀었다. 그런데 어찌나 볼륨을 크게 틀어 놓았는지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사람과 차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가득한 거리를 60km의 속도로 질주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일본 친구들은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인도는 정말 재밌는 곳이구나라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겁에 질려 말도 나오질 않았다. 거리의 풍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이 거리는 차와 사람과 가축들이 경합을 벌이는 난장판이었다. 그런데도 기사는 기죽지 않고, 질주한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면서 손잡이를 꽉 잡았다.
--- p.119

요리사인 정하 덕분에 우리는 맛있는 닭볶음을 먹을 수 있었다. 정하는 배낭여행을 하던 도중에 네팔에 들렸다가 포카라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5개월 동안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가 정하는 다시 여행에 나섰다. 따지고 보면, 정하가 포카라짱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사장과 손님의 관계로 만났다가, 이제는 같은 여행자의 입장이 되어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행 도중에 동갑내기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하와 나 모두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라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에 빈자리가 생기면, 금방 다른 사람이 채워 주는 것 같았다. 정하는 이란을 경유해 터키로 간 후, 독일에서 월드컵을 보고 영국에 있는 친구가 소개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해외에서 한국 식당을 할 만한 곳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물론 요리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요리라는 전문적 기술이 있기 때문에 그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반면에 내가 배운 지리학이나, 철학을 이용해서 해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었다. 항상 대학생에 둘러싸여 생활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무척 좁은 삶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 p.185

우리는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을 은근히 비교하면서 표독스럽게 걷고 있었다. 한 늙은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온다.
“한국인이시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아저씨는 프라하를 방문한 한국인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파벨은 한국말을 꽤 할 줄 알았고, 수많은 여행객이 한글로 써 놓은 메모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언뜻 기억하기로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 민박 가지 말고, 파벨 아저씨에게 갑시다. 온리 10유로!”
“아저씨 너무 친절하시고, 정이 많으세요. 파벨 하우스로 오세요. 절대 후회 안하실 겁니다.”
호객꾼에게 사기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였지만, 나는 한국인의 칭찬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완벽했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이곳은 파벨의 집이라기보다는 한국인 여행자의 자체 커뮤니티와도 같은 곳이었다. 곳곳에는 한글로 써놓은 안내문이 있었다.
“샤워할 때는 샤워 커튼을 닫고 하세요. 안 그러면 바닥에 물이 고여서 아저씨께서 일일이 치우신답니다.”
“신발 가지런히 정리합시다. 아저씨께서 일일이 정리하시기 힘들잖아요.”
“방 값 떼어먹지 마세요. 아저씨께서는 방 값 달란 말씀을 안 하세요. 미리 챙겨 드리세요.”
도대체 파벨이라는 인물에게 얼마나 감동을 받았으면, 한국인 여행자들이 이렇게까지 자발적으로 행동할까. 모든 것이 놀라움과 감동이었다. 거실에 가자 지난 12년 동안 한국인 여행자들이 써놓은 방명록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파벨을 극찬하며, 파벨 덕분에 프라하 여행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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