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힘이라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제1장만이라도 읽어보라고 정중하게 요청하고 싶다. 제1장이 끝날 때쯤이면 과학적 방법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테고 이어지는 결론의 내용도 인정할 마음이 들 것이다. --- p.17
오늘날 이발소의 흰색과 붉은색 회전 원통이 이발사가 한때 외과의사 역할을 한 상징이라고들 종종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사혈 치료사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붉은색은 피를 나타내고 흰색은 지혈을 뜻한다. 원통 위 공 모양은 거머리를 담는 놋쇠 대야를 나타내고 원통 자체는 환자가 혈류를 늘리기 위해 힘껏 쥐어야 했던 막대기를 상징한다. --- p.24
대체의학 치료사라면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아나잔스카, 볼셰비키 여제』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진리는 신성모독에서 시작된다.”는 대공비의 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뒷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단서가 붙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신성모독이 위대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 p.63
1785년 루이 16세는 메스머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참여한 이 조사위원회는 몇 가지 실험을 했다. 한 실험에서는 메스머의 자화수를 담은 물컵을 평범한 물컵 사이에 놓아두었다. 다섯 개의 물컵은 겉보기에 모두 똑같았다. 그리고 어떤 물컵에 어떤 물이 들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원한 실험 참여자가 무작위로 물컵을 골라 물을 마셨다. 어떤 여성 참여자는 물을 마시자마자 기절했지만, 나중에 평범한 물을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기절한 여성 참여자는 자화수를 마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아는 상태에서, 자신이 자화수를 마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체가 그에 맞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 p.97
침이 무언가 치유 메커니즘을 촉발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플라세보 반응을 유발하기만 했을까? 여기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침이 플라세보 반응을 유발했을 가능성이다. 뾰족한 침, 가벼운 통증, 가벼운 침습 성(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것), 이국적 성격, 고대의 지혜에 기반을 둔 치료법, 괜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언론보도 등 침의 여러 속성은 플라세보효과가 발생할 이상적인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02
예를 들어, 동종요법사가 흔히 사용하는 30C 치료제는 모액을 백배로 희석하는 과정을 30회 반복해 얻은 것이다. 모액은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배로 희석된다.
0이 이처럼 쭉 이어진 게 그리 크지 않은 수로 보일지 모르지만, 모액 1그램에 들어 있는 분자 개수는 1,000,000,000,000,000,000,000,000개 이하이다. 0의 개수가 보여주듯 30C 치료제의 희석배수는 모액 속 분자 개수보다 더 크다. 극단적으로 희석된 용액에는 최초의 모액에 들어 있던 분자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 p.140
대체의학 치료사의 행동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아마도 현대의학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대체의학으로 치료받으라고 조언하는 일일 것이다. 중증질환(당뇨병, 암, 에이즈)을 앓는 환자가 의사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대체의학 치료사의 무책임한 조언을 따랐다가 엄청난 피해를 본 사례는 수없이 많다. --- p.256
예를 들어, 암 환자가 외과수술, 방사선요법, 항암주사 같은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현대의학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같은 치료법을 가리켜 ‘잘라내고 불로 지지고 독을 주입하는’ 짓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암 환자는 약초요법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약초요법이 더 안전하고 효과도 더 좋은 천연의 대체약으로 선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약초요법이라는 대체의학이 정말로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가 하는 점이다. --- p.293
사람들이 대체의학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대체의학의 기초를 이루는 세 가지 중심 원리와 관련이 있다. 이들 중심 원리는 의학에 대한 자연적, 전통적, 전체론적 접근법에서 유래한다. 대체의학 지지자들은 대체의학을 선택하는 강력한 근거로 이 세 가지 중심 원리를 거듭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교활하고 기만적인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대체의학의 세 가지 중심 원리는 한 마디로 오류이다. --- p.302
그런데도 대체의학 치료사들은 언제나 ‘대체’라는 말을 훈장처럼 앞에 붙여서 불충분한 치료법에 부당한 존엄성을 부여하곤 한다. 그들은 ‘대체’라는 말로, 과학이 놓친 무언가를 포착해 제대로 활용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한다. 그러나 대체생물학, 대체해부학, 대체검증, 대체과학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듯이 대체과학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 p.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