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대화편을 읽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 어느 것이 진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나 말이고, 어느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나 말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는 점이다. […] 특히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자였는데 플라톤은 그렇지 않았다고 보는 주장은 두 사람의 사상을 분리시킬 경우에 대단히 편리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한나 아렌트나 칼 포퍼 등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 내가 보기에 그런 구별은 가능한 한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에서 분리시켜 민주주의 철학자로 숭상하려는 의도에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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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우정과 같은 말은 민주정에 비판적이었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그들은 본래 민주정에 비판적인 사회계층인 귀족에 속했다. 플라톤은 본래부터 귀족이었고, 소크라테스는 평민출신이었으나 평생 평민을 경멸하고 귀족처럼 노동을 하지 않고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도 추첨에 의해 공직에 취임한 적이 있었지만 추첨제를 멸시했고, 추첨제는 전문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직접민주정 자체를 부정했다. 따라서 그가 반민주주의자로서 민주주의에 의해 재판을 받은 것은 어쩌면 사필귀정 같은 것이었다.
--- p.10
민주사회였던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언행을 한 소크라테스의 반민주적 행위는 응당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언행 때문에 그가 고발당하고 사형에 처해진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민주국가에서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회의를 느끼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그리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최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나마 차선의 방법이고,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관용을 베푼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여전히 믿음과 희망의 대상이 될 만하다.
--- p.80
한나 아렌트는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 시민이 이상적인 정치적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 자유시민은 정치의 전문주의를 부정하고 스스로 입법, 사법, 행정의 책임을 진다. 그러나 그러한 공무의 수행은 진정으로 정치적인 활동인 담화의 공간을 창설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절차일 뿐이다. 즉 공무의 궁극적인 의미는 공적 공간을 영속화, 안정화시키는 데 있다. 즉 공적 공간에서 모든 공적 문제가 개개인에 의해 자유롭게 표출되어 폭력이나 무력이 아닌 발언과 설득을 통해 결정되고 해결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데 공무수행의 정치적 의미와 가치가 있다. 아렌트는 폴리스가 이러한 공적 공간의 효시이자 전형이라고 보았다.
--- p.132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우선 외모가 못생겼고, 평생 거의 씻지도 않아 더러웠으며, 사시사철 모직외투를 입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평생 무위도식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유산을 밑천으로 늦결혼을 한 뒤 세 아들을 두었지만 그들을 부양하기 위한 돈벌이는 하지 않고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면서 살았다. […] 또 사람 만나기를 워낙 좋아해, 자연을 숭상하는 요즘의 일부 철학자들과 달리 시골을 피해 평생 도시에서 살았다. […] 소크라테스는 글도 한 줄 쓰지 않았다. 그는 서재의 철학자, 글쓰는 철학자가 아니라 말하는 철학자였다.
--- p.142
“국정과 법률에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먼저 조국을 납득시켜라. 그게 아니면 조국을 떠나라. 납득도 못시키고 떠나지도 못한다면 조국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 이것이 국가와 법이라는 가공의 대화상대와의 가상문답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하고자 한 말이다.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같은 뉘앙스가 흠씬 묻어난다. […] 소크테스의 원칙에서 나는 법과 국가를 내세워 인간을 탄압한 나치나 유신 정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p.225
지금으로부터 2백 년쯤 전부터 범세계적으로 민주주의 바람이 불었지만 그 대세는 어디까지나 간접민주주의와 전문가주의가 복합된 관료주의 같은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가 가졌던 아마추어리즘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에 적대적이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특히 플라톤이 그 세력을 유지했다. 지난 2천 년간 봉건사회에서는 물론 지난 2백 년간의 민주사회에서도 그들의 학설이 옳다고 칭송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실상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 물론 지금 우리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그대로 따라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든가 그것은 단지 중우정에 불과하다는 식의 편견은 버려야 한다.
--- p.23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