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가 제시한 일본의 전후사 시대 구분은 다음과 같다.
1. 패전과 점령, 한국전쟁,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일미 안보조약(1945~1960)
2. 고도 경제성장, 베트남 전쟁 시대(1963~1973)
3. 1차 석유파동 - 냉전 체제의 종언, 버블 붕괴(1973~1990)
4. 걸프전쟁 - 9 ㆍ 11 동시다발 테러, 이라크 전쟁(1990~현재)
저자는 각 시대를 1장으로 하여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1기는 패전 이후 일본이 경제적으로 국가 재건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다.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적 국제 정치의 전략에 참여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GHQ 점령, 냉전시대의 개막,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일미 안보조약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점령은 ‘한국 전쟁 특수’라는 상황 하에 일본의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2기는 고도성장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베트남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일본은 ‘경제’에서의 혁명을 겪게 된다. 1960년을 경계로 한 안보투쟁이 끝나고 이케다 내각에 의한 소득배증계획이 예상외의 경제성장을 불러왔다. 일본은 이 시기에 대미 수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다. 선진국과의 교류를 통한 개방경제체제 속으로 뛰어들면서 외적인 경제 발전은 이룩했으나, 자력에 의한 근대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 또한 발생한다.
3기는 베트남 전쟁의 종결과 소련의 붕괴와 냉전체제가 막을 내린 시기다. 일본 사회는 70년대의 오일쇼크, 80년대의 경제대국 그리고 90년대 버블경제 붕괴와 더불어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든다. 더 이상 선진국과의 교류, 의존적 경제체제는 지속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4기에 일본이 겪게 되는 전쟁들은, 일본의 ‘국가 형태’를 결정짓는 사건으로 작용한다. 자위대의 해외 파병으로 인해, 전쟁 포기라는 헌법 9조의 평화 정신의 기조가 무너지면서, 헌법의 유효성은 상실된다. 냉전붕괴와 더불어 ‘21세기 시스템’, 즉 냉전 붕괴에 따른 미국의 일국화, 단독 행동주의, 군사기술, 무기의 하이테크화, 전쟁 형태의 변화 등으로의 이행은, 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연속과 단절의 기로에 서게 했다. 일본은 이제 새로운 ‘단절’로의 이행을 시도해야 할 때다.
저자는 단호하게 일본의 전쟁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키나와의 반환과 중일 국교정상화, 주요 선진국 정상회담 참가로 미루어 보아, 일본은 전후사를 잘 마무리 한 듯 보인다. 그러나 자위대의 이라크 전쟁 파병,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 고이즈미 수상의 그릇된 역사인식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비판은 일본의 전후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일본의 과거로 회기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한다.
마지막에 저자는 앞에서 이어온 신랄한 비판에 이어, 자국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전후의 종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미국에의 자립성 회복과 아시아에 대한 과거 청산, 그리고 헌법 9조의 존립이다. 이것이 일본의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역사가는 그 시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거꾸로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 연구 방식인 문서자료, 선행 연구와 더불어 저자의 기억과 체험, 그리고 당시의 증언을 삽입하는 서술방식을 사용하였다. 이 책은 분명 역사서이지만, 책 속에 담겨있는 저자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며 ‘기억’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일본의 새 내각이 구성되었다. 전후 세대로서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 지는 시점이다. 우리의 언론은 신국가주의와 일본국 헌법 개정문제를 놓고 우려를 나타낸다. 일본 국민들이 어떻게 대응할 지 주목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미군 기지 문제, 한반도 통일 문제 등을 곳곳에 적용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현위치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