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은 파괴와 건설, 공포와 평화, 학살과 부활, 탄압과 자유, 독재와 공화, 좌파와 우파 등 서로 상반되고 얼룩진 상황을 만들어냈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엇갈린 해석도 많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근대 시민국가 · 자유주의 · 민주주의를 탄생시키는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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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각속트는 “빈곤은 폭동의 원인은 될 수는 있으나, 혁명의 원인은 될 수 없다”라고 했다. 혁명 당시 프랑스의 대외무역은 앙시앵 레짐의 경제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활발했다. 농촌 실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달랐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까닭은 동시에 결부되어 나타난 정치 위기와 경제 위기 및 왕의 무능함, 그리고 앙시앵 레짐을 더 이상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의 자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명사회의 태도에서 드러나듯 귀족들은 국가의 위기상황에 비협조적이면서 왕을 도우려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면들을 고려할 때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사회적?심리적 측면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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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부터 1796년 사이에 약 17만 명이 희생되었고, 대외전쟁으로 약 100만 명이 죽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100만 명이 전사한 것을 보면 프랑스 혁명은 살육과 공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무분별한 처형과 무자비한 폭력은 정말 인류사회의 악이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나 생쥐스트 등은 그것을 ‘필요악’으로 생각했다. 알베르 소불의 말처럼 피와 눈물에 대한 책임은 정의를 위해 투쟁한 자들이 아닌 탄압과 폭력을 위해 무장한 자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재판도 없이, 변호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억울하게 살해된 이들의 넋이 과연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7월 14일의 기념행사로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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