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카테고리 내에서 70가지의 위대한 발명을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
1) 과학기술
수천 년 동안 인류에 봉사해온 기초 과학기술 가운데 일부는 인간의 생존과 결부되어 아주 일찍부터 발전되어 왔다. 인간이 사냥 도구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 기초 재료인 돌과 불, 뼈와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고 사냥한 식량을 운반하고 보관할 수 있도록 바구니 짜는 기술과 토기 굽는 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한 4가지 기본요소(흙, 물, 불, 공기)가 모두 들어간 토기 제작은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식량과 물을 보관하는 용기로 깨지기 쉬운 토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정주 공동체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목재와 뼈, 뿔로 이어진 도구 제작 기술은 귀 있는 바늘에까지 이르게 된다. 약 25,000년 전 유럽과 유라시아에 거주하던 크로마뇽인이 발명한 귀 있는 바늘은 바느질을 가능하게 하여 인류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사냥에 나설 수 있게 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시작된 과학기술이지만 곧 이러한 기술의 일부는 특권층과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되었다. 특히 결과물이 희귀하거나 정교한 물건일수록 소수의 특권층만 사용했다. 많은 경우 발명은 경제적인 필요보다는 다른 사람들 틈에서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물건이나 과학기술을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이 책에서 다룬 70가지 발명에 일관하여 관통하는 법칙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2) 주거와 생활
여기서는 간단한 덤불 주거지에서부터 석조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고안해온 독창적인 주거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집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편리한 재료를 이용해 주변 환경과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지어졌다. 더운 지역에는 열 전도율이 낮은 돌이나 진흙이 사용되었고, 기후가 온화한 지역의 고대 농부들은 목재와 억새풀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특별히 돌로 지은 건물은 특권의 상징이자 신과 여신들의 처소, 나아가서는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거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후대로 올수록 더 이상 소수의 독점물에 머물지 않고, 곳곳의 마을과 도시에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즉 민주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거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다른 발명품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가구, 배관과 수도 시설, 난방과 조명시설, 위생시설, 안전장치 등 주거와 생활은 공존했다. 또한 생활이 안정되자 인류에게 점차 즐거움을 주는 발명이 생겨났다. 다양한 조리법과 향신료 등이 발명되었고, 차와 초콜릿 등 색다른 음료에 이어 마약과 최면제까지 발명되었다. 특히나 술은 ‘접대’라는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고대인들은 노동용 동물을 포함하여 애완동물도 사육했다. 특히 군주의 즐거움을 위해 개인 공원과 동물원에서 애완동물을 길렀는데, 그 중에는 이국의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집트 고양이와 같은 일부 애완동물은 신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동물원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궁전에 세워졌다. 동물원은 왕의 특권을 더 높여주고,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은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곰을 훈련시켜 사자에게 채찍을 휘두르게 만든 경우조차 있었다고 한다.
3) 교통수단
바퀴, 달구지, 배와 같은 발명들은 짐을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바퀴는 선사시대 목수들이 거둔 최고의 업적이었고, 현대 기계공학의 어머니로서 곧 운송에 적용돼 썰매에 이어 수레, 나아가 기관차와 자동차의 직계 조상인 마차로 변신했다. 그리고 바퀴 사용의 결과 도로가 건설, 개편되었다. 도로 자체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위성 사진술을 통해 위치를 추적한 결과, 그 주변의 초목이 발육 부진현상을 보이면 과거 도로로 활용되었던 곳임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특별히 건조 지대에서는 사막을 횡단하며 며칠씩 버티는 낙타가 효과적인 교통수단으로 활용이 되었으나, 낙타에 올라타고 안정적으로 짐을 올리기 위해서는 특수한 안장 개발이 우선시 되어야 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낙타는 족장들이 동일한 무게의 금을 주고 구입할 정도로 귀하게 대접받았다고 한다.
4) 사냥, 전쟁 그리고 스포츠
사냥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 처음에는 육식동물들이 사냥하고 남은 것이나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던 청소부에 불과했던 인류가 동료 포식자들을 급습해 죽이고,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냥에 필요했던 발명과 전투에 필요했던 발명이 어째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명하고 있다. 전쟁 무기는 문명의 발전에 발맞추어 진화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쟁과 늘 동반자적 관계를 맺어온 스포츠는 그 저류에 제의의 성격이 짙게 깔려 있기도 했다. 특히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신화의 내용을 재현한 종교의식 차원의 구기 경기가 열렸다. 경기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선수들과 결과를 놓고 내기를 건 군중이 뽑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치러졌다. 피를 튀기며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는 마치 로마의 검투사 시합을 방불했다. 패자는 종종 경기장 근처의 ‘해골 걸이’에 머리를 꿰찔리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고, 패자가 내쏟은 피는 신들의 음식으로 바쳐지기도 했다.
5) 예술과 과학
여기에서는 음악과 회화를 비롯해 인류 역사 초기에 이루어진 예술 활동을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문자의 도입, 나아가 시간의 흐름과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인간의 지대한 관심을 둘러싼 논쟁을 생생히 보여준다.
개인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이자, 인간의 기억력을 보조하는 수단인 문자 체계 역시 고대에 개발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정보는 곧 힘을 의미했으므로, 국가 기밀을 보호하는 한편 갈수록 넓어지는 식자층 사이에서 정보의 흐름을 제한하기 위해 기호와 암호가 발명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야의 통치자들이 정복한 도시의 서기들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이 잔인한 통치자에 의한 우연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이었음도 알 수 있다.
책과 종이가 나오기 전에는 점토판과 밀랍판, 파피루스, 댓조각, 껍질 등이 정보를 기록하고 보존, 확산할 수 있는 재료로 활용되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후대에 전해진 정보에는 달력상의 사건과 천체의 움직임을 기록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초기의 농업사회에서 천문학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과학과 의학 지식도 빠르게 발전해 나갔고, 지도나 계산법 등도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6) 치장
인간이 언제부터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거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신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보호를 목적으로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던 인류는 곧 이에 장식적인 기능을 더하게 된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인들이 ‘본래 모습보다 더 멋있어 보이게 하는’ 옷을 즐겨 입었으며, 특히 메디아산 튜닉과 바지를 선호했다고 전한다.
보디아트와 문신 또한 신분을 나타내거나, 혈족 관계를 맺거나, 스스로 돋보이기 위해 사용되었다. 종교 의식이 인간 사회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으면서 보디페인팅은 성년식과 무도회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보디페인팅은 사회에서의 역할과 지위를 나타내는 신분 확인의 수단이기도 했다. 정착 생활이 점차 확산되면서 도시가 생겨나고, 농사를 짓지 않는 부유층과 유한 계층이 출현했다. 이에 따라 값비싼 옷과 신발과 장신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욕구에 부합하는 발명들이 점점 더 활발히 만들어졌다.
---본문 내용 요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