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먹고 산다. 성경은 음식이 인간의 몸에 영양분을 주듯이 거룩한 공동체에 영양분을 준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성경을 배우거나 연구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흡수한다. 그것을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 물질대사를 시켜서, 사랑의 행위를 하고 시원한 물을 대접하게 하며, 온 세상에 선교가 일어나게 하고, 치유와 전도를 일으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행하게 하고, 성부 하나님을 경배하며 두 손을 들어 올리게 하고, 성자와 함께 발을 씻기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따라서 영성 신학의 텍스트이기도 한 그 텍스트는,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성령을 굳게 붙들며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고 삼위일체의 틀을 가진 성경이다. 이 성경은 거대하고 포괄적인 이야기, 바로 메타 이야기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런 이야기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체로 성경은 기본적으로 거대하고 광대한,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내러티브다.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제일 중요한 말의 수단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큰 곤란에 처할 수 있다.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을 읽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어떤 사람의 손에 쥐어 주면서 ‘그것을 읽으라’고 명령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자동차 열쇠 한 묶음을 청소년의 손에 쥐어 주고 자동차를 한 대 주면서 ‘운전해라’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그 만큼 위험한 일이다. 기술의 작은 부분을 손에 넣고는 그것을 무식하게 사용해서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기술이 주는 권력에 도취되어 그것을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거대한 무리의 번역가들 틈에 있음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선생들, 설교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부모들, 세계 곳곳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일터에서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이 다양한 사회적인 모임에서 활동하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는 일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며, 이 텍스트를 읽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살아내는, 그 책을 먹는 사람들이며, 그 다음에는 이 성경을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에서 듣는 있는 그대로의 언어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