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달음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자비를 구현할 때에야 이뤄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조건 없는 ‘자비’에서 나옵니다. 가령 사랑이란 단어엔 증오라는 반대말이 있어요. 그러나 자비에는 반대말이 없어요. 사바세계의 중생이 진정 목말라 하는 것은 미움과 증오의 반대어로서의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어떤 반대어도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한 자비라는 광명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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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경전 속 글귀만이 아니라 고통받고 설움받는 이웃의 신음과 탄식 속에도 있어요. 자비는 타인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자(慈)와 타인의 고통을 없애주는 비(悲)가 합쳐진 것이지요. 타인의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더해주는 자비 실천이야말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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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새끼 보셨죠? 가마니 보셨죠? 그 둘은 서로 다른 제품입니다. 그런데 그 제품들의 재료는 뭡니까? 짚이죠. 제가 강조하는 본질, 즉 ‘무아ㆍ공의’ 핵심은 ‘짚’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부부 간에도 서로 다른 제품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티격태격할 수밖에요. 하지만 두 제품도 ‘짚’이라는 본질은 똑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ㆍ공’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입니다. 수백 가지 제품이 있지만, 재료는 모두 똑같은 ‘짚’이에요. 이걸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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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괴로움이 해결 안 된 상태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정치를 하고, 철학을 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100% 실패합니다. 내 괴로움을 해결하지 않은 채 현실을 살면 끊임없이 문제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사회, 모든 곳에서 항상 시비분별과 불협화음의 고뇌 속에 살게 됩니다. 고통과 근심이 그칠 날이 없어요. 그러나 자신의 괴로움이 해결된 사람이 기업가, 정치가, 학자가 된다면 그야말로 극락세계와 다름없이 평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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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눈, 귀, 코, 입은 늘 밖을 향해 있어요. 반조는 이들을 안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밖의 사물에 끄달리지 않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야말로 참선 수행의 기초입니다. 기초를 잘 다졌을 때 수행은 급진전하기 마련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도 반조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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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실상인 본래면목, 마하반야바라밀, 우리의 참마음은 본래 맑고 밝아 한없이 자비롭고 활력이 넘치고 무한한 지혜가 원만합니다. 그런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일체의 어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고난도 그 마음에 어둠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듯 지나갑니다. 항상 맑고 밝고 활기차고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모습이 바라밀 행자,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 p.94
이 세계는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서로 끊임없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가르침을 일러주는 스승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이의 노래 속에서, 내가 쉬이 듣고 깨친다면 그 아이가 스승이에요. 노래를 부르는 아이에게 깨달음을 얻는 우리가 바로 법을 구하는 선재 동자입니다.
--- p.115
부처님께서는 인과(因果)란 한 치의 오차 없이 분명하다고 하셨습니다. 살다보면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잘 먹고 사는 이들을 봅니다. 좋은 일을 하는데 사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이들도 있어요. 그것은 아직 업(業)의 씨앗이 영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금생에 받지 않으면 다음 생에 언제든 그 과보는 받게 됩니다.
--- p.124
기도는 내 마음속에 있는 번뇌 망상들, 탁한 부분들을 맑게 해 마음을 밝힘으로써 업장이 맑아지게 되는 수행입니다. 업장은 업으로 인한 장애입니다. 그 장애가 맑아지니 그동안 장애에 의해 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전보다 수월하게 해결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보통 기도를 한다고 하면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가피를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부처님이 스스로 이뤄내는 것입니다.
--- p.132
‘일꾼은 공부를 해도 일 삼아 공부를 하고, 공부꾼은 일을 해도 공부 삼아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수행자에게는 먹고 자고 일하고 쉬는 것까지도 공부여야 합니다. 공부가 따로 있고 자기의 삶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졸음이 오면 이겨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배고프면 오히려 불식(不食)도 하고 일종식(一種食)도 하면서 극복하는 것입니다.
--- p.156
가까운 사람을 절에 데리고 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저도 출가 전에 동생과 친구를 포교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오래도록 힘들게 설득해 절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후 내가 조금 잘못된 행동을 하면 “형은 불교를 믿는 사람이 왜 그러냐.”고 뭐라 합니다. 그럴 때마다 행동을 돌아보고 조심하게 됐습니다. 포교는 남을 교화하면서 동시에 나를 변화시키는 아주 좋은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 p.166
마음을 닦는 사람들은 하늘을 우러러 당당합니다. 세상 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겸손합니다. 세상에 지고 나온 것대로 열심히 경험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마음을 닦는 이유는 텅 빈 허공처럼 자유롭고 밝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대자유인, 부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마십시오. 누구 남편은 이랬고 누구 자식은 저랬다는 이야기들은 다 소용없습니다. 그저 그 자식을 통해서, 남편을 통해서 자신의 도를 닦는 것일 뿐입니다.
---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