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여, 당신속에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적 증거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요한 웨슬리는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글로소오프 목사는 두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목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고 질문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입니까? 그러나 요한 웨슬리에게는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는 멋쩍은 듯이 대답하기를 "예, 압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글로소오프 목사는 "예, 옳은 말씀입니다만, 그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에게는 어떤 분인가를 알고 계십니까?"라고 또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우물쭈물 대답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때부터 그의 마음 속에 큰 아픔이 시작되엇습니다. "왜 나는 자신있게 대답을 못할까? 내가 이러고도 목사냐? 이러고도 선교사냐?"라는 뼈아픈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영국에 다시 돌아와서 몹시 가슴 아프게 진통을 했습니다. "나의 믿음은 어딘가 모르게 잘못되어 있나 보다. 내가 오늘 저녁이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열병을 앓듯 진통하는 가운데서 드디어 하나님이 그에게 빛을 던져 주셨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거듭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오늘날 기독교 역사에 샛별처럼 빛나는 요한 웨슬리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이 시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저는 똑같은 질문을 당신에게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내적 증거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당신은 이 두가지 질문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당신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내하면 인간은 다 죄인이며 하나님이 죄를 보시는 입장은 대단히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를 범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 수 있겠지. 인간이니까 그럴 수가 있을 거야." 하면서 죄를 가볍게 다루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단순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에를 들어, 아담이 무슨 큰 죄를 범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으 것밖에 범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고하고 죄인에 대해서는 영원한 심판을 내리시는 공의로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죄를 생각하는 입장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보시는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하고 자신에게 쉬운 방법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자기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pp 210~212
"당신은 구원이 필요한 사람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대답에 따라 당신의 영원한 장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속고 있고 영원히 구제가 불가능한 실패의 삶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피땀어린 재산을 창녀와 놀아나면서 다 탕진하고 돼지를 치는 남의 집 품꾼으로 전락하였다가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돌아온 자식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에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크고 깊은 사랑을 가진 아버지가 계십니다.
--- 책표지 중에서
"형제여, 당신속에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적 증거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요한 웨슬리는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글로소오프 목사는 두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목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고 질문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입니까? 그러나 요한 웨슬리에게는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는 멋쩍은 듯이 대답하기를 "예, 압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글로소오프 목사는 "예, 옳은 말씀입니다만, 그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에게는 어떤 분인가를 알고 계십니까?"라고 또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우물쭈물 대답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때부터 그의 마음 속에 큰 아픔이 시작되엇습니다. "왜 나는 자신있게 대답을 못할까? 내가 이러고도 목사냐? 이러고도 선교사냐?"라는 뼈아픈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영국에 다시 돌아와서 몹시 가슴 아프게 진통을 했습니다. "나의 믿음은 어딘가 모르게 잘못되어 있나 보다. 내가 오늘 저녁이라도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열병을 앓듯 진통하는 가운데서 드디어 하나님이 그에게 빛을 던져 주셨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거듭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오늘날 기독교 역사에 샛별처럼 빛나는 요한 웨슬리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이 시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저는 똑같은 질문을 당신에게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내적 증거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당신은 이 두가지 질문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당신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내하면 인간은 다 죄인이며 하나님이 죄를 보시는 입장은 대단히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를 범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 수 있겠지. 인간이니까 그럴 수가 있을 거야." 하면서 죄를 가볍게 다루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단순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에를 들어, 아담이 무슨 큰 죄를 범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으 것밖에 범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고하고 죄인에 대해서는 영원한 심판을 내리시는 공의로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죄를 생각하는 입장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보시는 입장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하고 자신에게 쉬운 방법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자기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pp 210~212
"당신은 구원이 필요한 사람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대답에 따라 당신의 영원한 장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를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속고 있고 영원히 구제가 불가능한 실패의 삶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피땀어린 재산을 창녀와 놀아나면서 다 탕진하고 돼지를 치는 남의 집 품꾼으로 전락하였다가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돌아온 자식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에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크고 깊은 사랑을 가진 아버지가 계십니다.
--- 책표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