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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 + 성학집요 (전2권)
풀빛 200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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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철학창고

책소개

목차

제3권 - 성학십도

'청소년 철학창고'를 펴내며
들어가는 말
<성학십도>에 나오는 주요 인물

<성학십도>를 올리는 이유
1. 태극도-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라
2. 서명도- 천지 만물과 하나가 되어라
3. 소학도- 일상적인 일에 충실하라
4. 대학도- 수신으로부터 시작하라
5. 백록동규도- 인간이 되는 학문을 하라
6. 심통성정도- 마음을 바르게 해라
7. 인설도- 인을 본체로 삼아라
8. 심학도- 잃어버린 본심을 찾아라
9. 경재잠도- 경의 세부 항목을 실천하라
10. 숙흥야매잠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라

성인이 되기 위한 열 가지 그림, 성학십도
퇴계 이황 연보
제3권 - 성학십도

'청소년 철학창고'를 펴내며
들어가는 말
<성학십도>에 나오는 주요 인물

<성학십도>를 올리는 이유
1. 태극도-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라
2. 서명도- 천지 만물과 하나가 되어라
3. 소학도- 일상적인 일에 충실하라
4. 대학도- 수신으로부터 시작하라
5. 백록동규도- 인간이 되는 학문을 하라
6. 심통성정도- 마음을 바르게 해라
7. 인설도- 인을 본체로 삼아라
8. 심학도- 잃어버린 본심을 찾아라
9. 경재잠도- 경의 세부 항목을 실천하라
10. 숙흥야매잠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라

성인이 되기 위한 열 가지 그림, 성학십도
퇴계 이황 연보

저자 소개 2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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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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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와 성신여대에서 강의를 하였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이자 한국문화유산정책활용연구소 소장, 문화관광부종교차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공자와 맹자의 도덕철학』 『N세대를 위한 유교철학 에세이(공저)』, 옮긴 책으로 『논어』 『대학?중용』 등이 있으며, 수필집 『나는 누구인가』, 시집 『나는 나무를 알지 못한다』와 소학小學을 현대적으로 풀어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주는 동화 『숟가락 먼저 들면 왜 안돼요』, 명심보감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해석한 동화 『내가 잘못하면 왜 엄마가
성균관 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와 성신여대에서 강의를 하였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이자 한국문화유산정책활용연구소 소장, 문화관광부종교차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공자와 맹자의 도덕철학』 『N세대를 위한 유교철학 에세이(공저)』, 옮긴 책으로 『논어』 『대학?중용』 등이 있으며, 수필집 『나는 누구인가』, 시집 『나는 나무를 알지 못한다』와 소학小學을 현대적으로 풀어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주는 동화 『숟가락 먼저 들면 왜 안돼요』, 명심보감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해석한 동화 『내가 잘못하면 왜 엄마가 혼나요?』등이 있다. 다양한 유교 경전과 옛 선조들이 공부했던 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여 아랫세대에 전하는 일과 유교를 현대화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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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이
중종 31년(1536)에 태어나 선조17년(1584)에 숨졌다. 어려서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배우고 명종 3년 13세로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으로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1년 반 정도 불서를 연구하기도 했다. 23세 되던 해 겨울 별시에 응시, <천도책>을 지어 천하에 이름을 떨쳤고, 명종 19년에 생원시와 문과에 모두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원공으로 일컬어졌다. 호조좌랑에 초임된 이후 직제학, 동부승지, 병조참지 대사간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병으로 사직한 후에는 석담(石潭)에서 학문 연구에 전심하였으며, 1581년 다시 대사헌과 예문관제학을 겸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양관대제학을 지냈다. 1583년 당쟁을 조장한다는 동인들의 탄핵을 받고 사직했다가 판돈녕부사에 등용, 이조판서에 이르러서는 동서 분당의 조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저서로 <율곡전서>, <성학집요>, <격몽요결>, <소학집주개본>, <중용토석경연일기>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470쪽 | 846g | 크기확인중

리뷰/한줄평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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