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生]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당 정권이 아직은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 삼 월중순,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邑)의 별로 볼것없는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려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게 된 까닭이었는, 그때 나는 열두 살에 갓 올라간 5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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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놈이 하나한테 하루 종일 끌려다녀? 병신 같은 자식들.'
'너희들은 두 손 묶어 놓고 있었어? 멍청한 놈들.'
그렇게 소리치며 마구 매질을 해 댈 때에는 마치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영문을 몰랐으나, 그 효과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우리 중에서는 좀 별나고 소진 거리 아이들 다섯 명이 마침내 석대와 맞붙은 일이 벌어졌다. 석대는 전에 없이 사납게 굴었지만, 상대편 아이들도 이판사판으로 덤비자, 결국은 혼자서 다섯을 당해 내지 못하고 꽁무니를 뺐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세 그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란 책 한 권씩을 나눠 주며, 우리 모두가 부러워할만큼 여럿 앞에서 그들을 치켜 세웠다. 그러자 다음 날, 미창 쪽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 뒤 석대는 두 번 다시 아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pp.131-132
그 바람에 나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도 잊고 박원하가 하는 짓을 유심히 살폈다. 그 애는 힐끔힐끔 시험 감독을 나온 다른 반 담임을 훔쳐보며 방금 말끔히 지운 곳에 얼른 이름을 써 넣었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은 엄석대의 것이었다. 이름을 다 써 넣고서야 겨우 여유를 찾은 그 애가 사방을 슬그머니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찔끔했다.
--- p.93
거기다가 그런 내 첫인상을 더욱 굳혀 준 것은 교무실이었다. 내가 그때껏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은 서울에서도 손꼽는 학교답게 넓고 번들거렸고, 거기 있는 선생님들도 한결같이 깔끔하고 활기에 찬 이들이었다. 그런데 겨울 교실 하나 넓이의 그 교무실에는 시골 아저씨들처럼 후줄그레한 선생님들이 맥없이 앉아 굴뚝같이 담배 연기만 뿜어 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데리고 교무실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담임 선생님도 내 기대와는 너무도 멀었다.
아름답고 상냥한 여선생님까지는 못 돼도 부드럽고 자상한 멋쟁이 선생님쯤은 될 줄 았았는데, 막걸리 방울이 튀어 하얗게 말라붙은 양복 윗도리 소매부터가 아니었다. 머리 기름은커녕 빗질도 안해 부스스한 머리에 그날 아침 세수를 했는지가 정말로 의심스런 얼굴로 어머님의 말씀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있는 그가 담임 선생이 된다는게 솔직히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뒤 일 년에 걸친 악연(惡緣)이 그때 벌써 어떤 예감으로 와 닿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악연은 잠시 뒤 나를 반아이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전학온 한병태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