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4 과 1:16~17에 있는 복음의 두 정의들이 잘 보여 주듯이, 사도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탄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온 세상에 대한 자신의 통치를 이루신다고 기독론적으로도 선포하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이 우리 인간들에게는 칭의가 되고 성화가 된다고 구원론적으로도 선포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주로 후자로, 그것도 칭의론 위주로 복음을 전개하는데, 우리가 복음의 이 두 정의들이 같은 뜻을 가진 하나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칭의의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구원론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되며, 칭의 된 우리는, 즉 죄 사함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 그것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존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율법의 문제로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논쟁하는 상황들에서는 주로 ‘칭의’의 언어로 표현하지만, 헬라 이방인들과 관계해서는 ‘성화’의 언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언어 사용을 제대로 살피면, ‘성화’는 ‘칭의’에 이어지는 구원의 새로운 단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함께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 되고 그러한 백성으로 살아감을 나타내는 동의어들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칭의’를 믿는 자 되는 세례 때 선취한 구원(과거)과 최후의 심판 때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미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를 받아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감(현재)에도 적용되는 범주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칭의’의 법정적 의미와 관계적 의미를 둘 다 중시하여 ‘주권의 전이’, 곧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이전됨으로 이해하면,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전 과정(과거, 현재, 미래)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윤리와 분리된 칭의론이 아니라 윤리적 삶을 요구하는 올바른 칭의론을 믿고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칭의의 시작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고 대속의 제사로 넘겨주심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의 완성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석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중보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의 현재적 과정도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에 의존하고 순종하여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삶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니, 칭의의 전 과정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칭의가 철저히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님의 태초의 예정으로 시작된 것이고 종말에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석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중보로 완성되는 것이니 안전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확신과 안도들 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믿는 자가 현재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탈락한다고 경고하고, 최후의 심판 때 우리의 행위에 따라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상호 모순되는 것 같은 가르침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성령의 도움(은혜)을 받아, 이중 사랑 계명의 요구로 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해서 삶으로써 ‘의의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삶의 구조도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의 주권자적 경륜 가운데 각자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소명’)의 수행에 대한 이해도 분명히 해야 하고, 최후의 심판 때 얻는 ‘상’에 대한 이해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상호 모순되는 것 같은 ‘예정과 성도의 견인론’과 ‘탈락의 가능성’을 그들의 의도의 평면에서 통합하여, 그들을 논리적 긴장 가운데 함께 견지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