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6/30 이상구(flypaper@yes24.com)
우선, 제목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듯 하다. '고양이 요람', 영어로 'Cat's Cradle'로 옮겨 지는데, 사전을 찾아 보면 '실뜨기 놀이'로 설명되어 있다. 어원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에스키모도 알고 있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게임 중의 하나인 이 '실뜨기 놀이'에 영어권 사람들은 '고양이 요람'이라는 아주 다이렉트한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의 어떤 일급 번역가는 자신의 번역론 저서에서 동명의 이 책을 '실뜨기'로 번역해야 함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책을 읽다 보면 '고양이 요람'이라는 단순한 직역이 훨씬 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설픈 증거가 p.182의 다음과 같은 대화이다.
뉴트는 의자 안에 몸을 웅크린 채로 있었다. 그는 페인트 묻은 손을 내밀어 마치 고양이 요람을 뜨고 있는 듯한 모양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미쳐 버리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죠. 고양이 요람이란 누군가의 손바닥 사이에 있는 여러 개의 X자에 불과한데, 어린애들은 그놈의 X자들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그리고?' '빌어먹을 고양이도 없고, 빌어먹을 요람도 없는 거죠.'
실뜨기 놀이를 고양이 요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른들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 어린이들의 눈에는 고양이도, 요람도 없어 보이는 손바닥 사이의 상형문자일 뿐이라는 상징적 비유인데....만약 이 상징이 배제된 채 곧이곧대로 '실뜨기 놀이'로 작품이 제명되어 진다면, 헛것을 쫓는 권위주의적 삶의 자세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실뜨기 놀이라고 해석되는 영어 단어 'Cat's Cradle'에는 고양이도 요람도 없는 아주 자의적인 설정이라는 것이다. 자의적인, 그로 인해 치밀하지 못한 어원의 단어인 'Cat's Cradle'은 정확히 '실뜨기 놀이'로 옮겨지기 보다는 그에 걸맞도록, 자의적이고 치밀하지 못하게 '고양이 요람'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줍짢게 따지고 들어 기분이 쫌 찝찝하긴 한데, 사실..그런 딱딱한 면에서 조금 물러나서 보면....'큰 직사각형 안에 작은 직사각형이 들어 있는 모양'의 실뜨기 놀이 첫관문을 '고양이 요람'이라고 표현한 상상력도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른들의 세계에선 야구장의 홈베이스를 개집같아 보인다고 'Dog's House' 라고 부르는 것도 짐짓 가능할듯 싶다. 애들은 어디 집이 있고, 어디 개가 있냐고 고래 고래 따질지 몰라도, 어른들의 눈에는 예절바른 개가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애들마냥 어른들의 세계에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게 있는 법이다. 애들의 순수한 동심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 것! 이 또한 어른들이 잊지 말아야 할 항목 중의 하나이다. 고집할건 고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떼거리로 덤벼드는 애들을 당해 낼 수 없다. (난..왜 애들이 싫지? 개나 고양이는 좋은데....^^)
핵폭탄을 만드는 과학자를 블랙 코미디로 다뤘다는 면에서 스탠리 큐브릭의 흑백 반전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스 러브'를 떠 올리게 하기도 하는 이 작품은 굳이 줄거리를 따라 잡지 못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유인즉, 무려 127개로 나누어지는 소단락 하나 하나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모티브 정도 되는 흔적을 숨은 그림 찾기처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줄거리를 따라 잡을 필요가 없다. 어떤 식으로 변형되었는지를 가만히 유추해 보면 된다. 물론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문장...그런건 없지만, 문장의 형식이나 사유 방식, 단어의 배열 같은 것들은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재밌게 봐야 할 것은 그런....유사점이 아니라, 어쩜 지극히 산만해 보이고, 비일상적인 상상으로만 굳어질 수 있는 형식을 어떻게 쏙쏙 들어 오는 문장으로 바꿔서 자기 책을 써나갔을까?...하는 방법론에 대한 궁금증을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문체라는게 모방한다고 되는것은 아니다. 무식하게 대학 노트에 그대로 배껴 써내려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느낌을 흡수하고, 스타일을 원용해 그 분위기를 자기 삶 속에서 스며들도록 재구성하는 작업일텐데....그 작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 나갔는지를 상상해 보는 재미가 내용의 디테일을 따라 잡는 것보다 더욱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거북이에 관해 궁금한게 있어.', '거북이가 목을 당겨 넣을 때, 걔네들 척추는 구부러질가 아니면 수축될까?'(p.36)라는 문장을 보면서 하루키는 핀볼 머신의 슈팅 레버를 떠올렸을까? 내지는, '지식에 대한 책'이라 불리는 어린이를 위한 책 광고 문안 '아빠!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에요?'(p.287)라는 질문을 읽으며 '사람이 죽으면, 경마장에 가서 유부초밥을 먹고, 캥거루가 파는 기차표를 끊어 유타의 소금사막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러 간단다.' 정도의 희멀건 농담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와 같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표현도 비유도 어눌하기 짝이 없었지만...여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면...굳이 줄거리를 따라 잡지 못해도 한편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고양이는 어디 있을까?' 하며 내용을 따라 잡는 실뜨기 놀이도 재미있겠지만, 나처럼 이해력이 더딘 사람에게는 '하루키는 어디 있을까?'하는 그림자 밟기 놀이도 제법 재밌었다는 얘기이다. '보네거트는 아무도 모방하지 않는, 그리고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작가이다.'라고 Harper's 지는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알게 모르게 모방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