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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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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풍경

이해인 등저 | 이레 | 2000년 08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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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0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599337
ISBN10 898559933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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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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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생각입니다만, 해질 무렵의 시골 풍경은 세상의 그 모든 흐르는 것들을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멈추어 서게 하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이미 흘러간 이야기와 미처 흘러오지 못한 이야기가 서로 만나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손잡고 엷게 얼굴빛 물들입니다. 바야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어느 때고 분주히 날아다니던 새들이 이 무렵에 유독 여러 마리씩 눈에 들어 오는 까닭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논둑길로는 염소 몇 마리가 주인을 따라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가고 늙은 할머니 혼자 사는 오두막 굴뚝에는 하얗게 빛 바랜 그리움 한줄기가 저녁 연기처럼 피어오릅니다. 그대여, 그럴 수만 있다면 저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적고 가난한 도량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 와서 결코 함부로 꿈꿀수 없는 게 '머무는 일' 인 것을 알지만, 때로는 머무는 일 이 곧 참으로 흐르는 일인 줄 또한 압니다.

길을나선 사람만이 머물 수 있고 머문 사람만이 길 떠날 수 있습니다. 한 삶이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집을 오롯이 다 지은 사람만이 마침내 또 유유히 길 떠날 수 있지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일도 지난날 그 어디에선가 우리가 진작에 집 한 채를 지은 덕분입니다.
--- p.99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게 정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분명히 정적을 듣고 있었다. 이 부드럽고 포근한 정적의 감촉은 청각이 아니라 촉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엇다. 일어나 부스럭거릴수록 잠이 멀어질 것 같은 위험성을 무릅쓰고 창호지 문을 열었다. 창호지문 밖 유리문을 통해 저만치 길모퉁이를 밝히는 가로등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 속으로 눈발이 분분히 날리고 있었다. 아아, 바로 저 소리였구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비유한 시인도 있었지만 내 귀는 그렇게 밝지 못하다. 나를 깨운 건 소리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고요, 평화, 부드러움의 감촉이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들어 황홀하고 감미로운 수면 속으로 서서히 침몰했다...p.29
나는 잠시 그곳에 들어오는 바람들을 읽는다. 나뭇잎 밑에 놀던 바람, 살구꽃을 붙잡고 놀다가 살구꽃과 함께 떨어진 바람, 나무 밑동에 코를 대고 자던 바람, 나는 그런 것들을 모아다가 청동거우로 하나 건다. 문득문득 생각나는 모습들을 하나씩 그려보기 위해서다. 그동안 살며 사랑하며 미안했던 사람, 보고 싶은 사람들, 애달픈 이들.... 바람은 멀리서 온다. 그리고 바람의 눈은 멀리 본다. 어떻게든 머리 갈 수 있는 것이 바람이다. 그런 바람 속에 나는 거을 하나 거는 것이다. 혹은 죽은 사람, 혹은 잊었다가도 꽃 피고 새울면 생각나는 사람, 잊혀지지 않는 거리, 맥줏집, 철길, 우드스탁, 팔과 이분의 일 등등의 모습들을 그 흐릿한 청동 거울로 들여다 본다.
--- p.81
나는 내 영혼에게 조용히 내가 마련한 선물 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나와 함께 네팔에 가는 거야. 그곳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지. 눈 덮인 세계의 지붕, 만년설이 지상의 가장 푸른 공기와 만나는 곳이지. 네게 그 설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 번도 훼손되지 않는 눈부신 햇살들이 그곳 산 정상에 쏟아지는 모습을 네게 선물하고 싶어.

내 영혼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내 영혼이 나직하게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나는 눈을 떴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눈인사를 했다. 하이. 짧게 답례했을 때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It's christmas music. 여자는 두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기내에 흐르는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클래식인가 아니면 팝? 거두절미의 나의 영어에 그녀가 웃었다. 세월의 흔적이 적당히 밴 그 웃음이 따뜻했다. 클래식. 그녀의 대답이 이어졌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인형이지요.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 곡은 나도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때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는 곡이었다. 곡 중 '꽃의 왈츠'를 제목으로 시를 쓴 적도 있지 않았던가. 크리스마스가 진즉 지났는데... 여자는 다시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호프만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그 음악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이야기의 배경이었다. 여자의 얘긴즉 때가 지난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얘기했다. 크리스마스는 눈에 덮인 계절이다. 지금 우리가 가려는 네팔은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속에 자리한 나라다. 그곳에선 일년 내내 눈 덮인 하얀 산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은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시즌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음악은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 썩 어울리는 음악이다. 결코 철늦은 음악이 아니다. 내가 천천히 얘기를 마쳤을 ...
---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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