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부터 공동체 삶을 꿈꾸며 모진 고초 속에 살아왔고, 이웃과 더불어 공동두레마을을 일구어낸 농사꾼이다. 그는 두레교회 목사이자 두레마을 대표이자. 고생고생해가며 자기의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설교자, 저술가, 복음 전도자, 그리고 잘 알려진 사회개혁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지도자중의 한사람으로 기독교 사회의 폐단에 대해 거침없는 변혁을 주창한다. 1941년, 소나뭇골 경북 청송(靑松)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계명대 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다. 유학의 기회를 뒤로하고 존재 의미를 찾고자 정신적인 방황을 하다가, '예수 안'에서 진리를 깨닫고 1969년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한다.
그러나 행동하는 예수를 닮고자 빈민운동에 뛰어들어, 1971년 10월 한양대 뒤편 청계천 판자촌에 활빈교회를 세운다. 1974년 젊은 동료 교역자들과 함께 유신체제를 반대, 대통령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안양, 수원 교도소에서 1년1개월간 복역하다가 1975년 초 특사로 출감한다. 그 해, 활빈교회가 있던 뚝방촌이 지하철 차고로 결정되고, 철거 통고를 받는다. 1976년 그는 청계천 철거 주민들과 함께 경기도 남양만 간척지로 집단 이주하여 두레마을을 세우나, 뼈아픈 큰 실패를 겪는다. 그러나 특유의 '바닥정신'으로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다시 두레마을 공동체를 일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후 두레 공동체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중국에는 연변두레마을이 있고 그곳은 약 5백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공동체의 일꾼들은 농산물을 수확하여 북한에 보내고 있다. 미국에는 1천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두레마을이 있으며 그 공동체는 쌀, 감자, 옥수수를 생산한다. 농산물을 팔아 재정을 확보하여 복음선교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김 목사는 두레장학재단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장학기금은 국내외 해외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참교육을 지향하는 두레자연 고등학교, 두레자연중학교, 두레학교, 두제자연유치원 등 전 연령층의 대안학교 이사장으로 교육활동에 남다른 관심으로 봉사하고 있다.
1995년 대한 적십자사의 봉사상 금상을 받았고, 그 이듬해 계명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를 받았으며, 2001년 미국 킹칼리지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를, 2006년에는 사일구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바닥에서 살아도 하늘을 본다』,『황무지가 장미꽃 같이』,『성서의 경제와 경영』외 여럿이 있다. 특히 그의 첫 번째 저서『새벽을 깨우리로다』는 100쇄를 넘어서 늘 독자가 선정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영어, 일어,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번역되었으며, 현재 독일어로 출간 준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