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가치, 다시말해 크리스천이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된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 곧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요, 말씀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말씀대로 사는 삶을 수반하는 까닭이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의 눈은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하며, 아주 가까이 그러니까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한다. 우주처럼 큰 것을 볼수 없는가 하면 세균처럼 미세한 것도 볼 수 없다. 태양처럼 밝은 것은 물론이요 암흑같이 어두운 것 또한 보지 못한다. 시야를 차단하는 장애물이 있으면 그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도리가 없다. 분명히 내 신체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내 속 어느 곳에 무슨 병이 들어 있는지조차 보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볼 도리는 없다. 만약 인간의 눈이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속았다'거나 '배신당했다'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눈은 자기 앞일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단 1초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다. 9.11 테러로 인해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앞일을 내다볼수 있었던들, 그날 그 시각 그 참사의 현장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인간의 보는 능력이란 이처럼 불완전하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인간 시력의 진상이 이러하다면 청력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은, 청력의 효율성이 시력의 1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 시력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청력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시력과 청력을 포함하여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이렇듯 보잘 것 없고, 또 지극히 제한적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믿음이 시작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나의 가족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만약 지금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모습과 상태를 인식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현재 내 인식의 범위 너머에 있기에 나는 지금 이 시간 그들이 무사하리라 믿으면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와 똑같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인식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하나님은 인식의 대상으로 족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온전한 인식이란 불가능하기에, 즉 인간의 제한된 시력과 청력으로는 온전히 하나님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을 떠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될 수 조차 없다. 그래서 '믿음장'으로 불리고 있는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본문 중에서
2천 년 전 유대와 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결혼한 여자가 먼저 이혼을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단 한 경우가 있었다. 여인이 결혼한 뒤에 알고 보니 남편의 직업이 피장이었을 경우, 그 여인은 무조건 이혼을 제기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부정한 피장이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였으니 정상인이 아니고서는 피장이의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피장이의 집에서 자기 위해서는 피장이의 이불을 덮어야 하고, 피장이의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야 하며, 피장이의 식사 도구로 식사를 해야 하고, 피장이의 변소에서 용변을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부정의 연못 속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던지는 것을 의미하기에 정상인으로서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그를 모시고자 하는 많은 크리스천들의 청을 마다하고 유독 피장 시몬의 집에서, 그것도 하루가 아닌 여러 날을 묵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초대 교회가 직업에 대한 계급의식을 타파한 증거라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모두인 것은 아니다. 베드로가 피장이의 집에서 잠을 잤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심오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부정한 짐승의 시체를 만지는 자라 하여 피장이와 신체적 접촉은 말할 것도 없고 만남 자체를 부정하게 여긴다면, 피장이가 만든 가죽제품 또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할 것이다. 가죽제품이란 부정한 피장이의 부정한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모든 가죽제품엔 피장이의 부정이 전이되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 부분만은 달랐다. 가죽제품을 부정하게 여기기는 커녕 벨트, 옷, 신발, 가방 등 가죽제품은 유대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필수품이었다. 이왕이면 더 고급품을 선호하였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이중성이요 이율배반인가?
피장이를 부정하다 하여 인간으로 취급조차 않는다면, 부정한 피장이의 손으로 만들어진 가죽제품도 응당 부정하게 여겨야만 한다. 가죽제품을 귀중한 필수품으로 선호한다면, 그 필수품의 제공자인 피장이 또한 귀하게 대접해 주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인간 이하의 존재로 부정해서는 안된다. (...) 그렇다면 우리는 사도행전이 왜, 베드로가 유독 피장 시몬의 집에서 체류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지 이제 그 연유를 알게 된다. 베드로가 욥바의 많은 사람들의 청을 마다하고 굳이 피장이 집에서 잠을 잤던 것은, 그는 말씀 안에서 자기 통합을 이룬 자였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유대인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역시 가죽제품은 선호하면서도 피장이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던, 자기 이중성과 자기 모순에 빠져있던 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니 피장이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였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의 한 부분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이에 베드로는 주저없이 피장의 집을 선택하고, 피장이의 이불과 수건 그리고 식기를 사용하면서 수일 동안이나 그곳에서만 유숙하였다. 그것은 그때까지 피장이를 부정해 왔던 그릇된 자기 삶에 대한 회개인 동시에, 말씀 안에서 자기모순과 이중성을 극복하고 자기통합을 이룬 자신에 대한 자기확인이었다.
--- 본문 중에서
(...)나일 강에 던져졌던 갓난아이 모세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전해 주는 내용이다. 그 아이를 건져 낸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갓 태어난 유대 사내아이를 모두 강에 던져 죽일 것을 명령한 이집트 왕 파라오의 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곱씹어 볼 수록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아이가 든 갈대 상자가 나일 강에 띄워지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이집트의 공주는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만약 그가 황금으로 치장된 왕궁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더라면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그녀는 굳이 나일강에서 목욕하기를 원했다. 아이가 든 상자가 있는 나일 강에서 말이다. 공주가 목욕하는 동안 몇 명의 시녀들이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만약 그들이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더라면 역사는 불가능했다. 시녀들은 하필이면 아이의 상자가 걸려 있는 갈대밭 쪽으로 걸어갔고, 덕분에 그 상자가 공주의 눈에 띄게 되었다. 하찮은 갈대 상자를 보고서도 공주의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공주는 시녀로 하여금 그 상자를 가져오게 해서 열게 하였다. 상자 속에서는 히브리 아이가 들어 있었다. 자기 아버지가 죽이라고 한 노예의 자식이었다. 그 순간 아이가 울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그로인해 공주의 마음 속엔 모성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숨어 있던 아이의 누이가 공주를 향해 다가갔다. 만약 그때 공주의 경호원들이 아이의 누이를 제지했더라면? 그러나 그날엔 경호원이 없었다. 그래서 히브리 노예 소녀가 그 누구의 제지도 없이 대이집트제국 공주에게 나아가 아이의 생모를 유모로 천거할 수 있었다. 공주가 비천한 노예 소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집트 여인을 아이의 유모로 삼았다면? 그러나 공주는 생면부지인 노예소녀의 말을 믿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이는 공주의 양자로 구원받았으면서도 생모의 품속에서 이스라엘인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이상 열거한 과정 중에서 단 한 과정만 어긋났어도 모세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구약 성경 에스더 역시 이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에스더서 1장은 페르시아제국 아하수에로 왕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도성의 크고 작은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7일간에 걸친 큰 잔치를 배설하였다. 잔치 마지막 날 주흥이 오른 아하수에로 왕은 사람을 보내어 왕비 와스디를 잔치 석상에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왕비는 왕의 청을 거절하였다. 이에 왕이 분노하여 대책을 대신들에게 묻자 므무간이 왕비 와스디를 폐비할 것을 왕에게 진언하였고, 왕은 즉석에서 그대로 행하고 말았다.
아무리 왕비라지만 절대군주인 왕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비록 왕비가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 할지라도 신하가 왕에게 감히 폐비를 진언한다는 것 또한 가당찮은 일이었다. 왕이 그 진언을 수용치 않을 경우 폐비를 제안한 신하는 목숨을 지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신하의 진언이 백번 옳았다 할지라도 단 한번의 거역으로 왕비를 폐비해 버리는 것 역시 대제국의 왕으로서는 경솔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그런데도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실제로 왕궁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에스더 2장부터 무슨 일이 전개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폐비당한 와스디의 뒤를 이어 유대여인 에스더가 왕비로 간택되었다. 와스디가 폐비당하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왕비에 오를 길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와스디 폐비사건이야말로 유대여인 에스더의 내일을 왕비로 가꾸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왕비가 된 에스더를 통하여, 온 유대인을 학살하려는 하만의 흉계로부터 유대민족의 내일을 보장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