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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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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죽이다

: 명성황후 살해 기록과 역사의 진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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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9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65g | 153*224*30mm
ISBN13 9788978012539
ISBN10 89780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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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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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 혜문 스님
1998년 봉선사에서 철안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운정사 금모선원에서 수선안거 후 현재 봉선사에서 수행 중이다. 2005년에 봉선사 말사인 내원암과 관련된 ‘친일파재산 위헌법률심판청구’와 삼성 리움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운동을 전개하면서 부당하게 반출된 불교문화재 환수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6년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간사를 맡아서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반환운동을 주도했으며, 현재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으로 해외반출 우리문화재 반환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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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살해는 ‘조선을 죽이기’ 위한 일본의 책략임을
을미사변에 가담한 일본인이 기록한 사료를 통해 밝힌다.


고바야카와 히데오는 〈민후조락사건〉 서언에서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 살해에 가담한 동기와 그 결과에 대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민비가 살해당한 명치 28년 10월 8일, 그때 나는 경성(京城)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다가올 일본의 앞날을 생각하면 비분강개를 금할 길이 없어 동지들과 함께 미우라(三浦) 공사의 계획에 참가하였다. 우리는 대원군을 앞세워 궁궐로 들어간 뒤, 총성과 칼부림이 난무하는 틈을 타 몸소 암살에 뛰어들었다...(중략)... 우리가 민비 암살에 참가했을 당시 마음속에 품었던 뜻은 이미 이루어졌다. 반도의 하늘과 땅은 이제 우리 일본의 것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희열을 참을 수 없다.”

이 회고록은 당시 일본의 우익세력이 ‘명성황후 암살사건’에 대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러시아가 지닌 극동정책의 큰 꿈, 반도병합을 위한 열망 등을 고려하면 밀약이 현실로 이뤄졌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을 것인가! 우리 일본의 조선정책은 어떤 의미에 있어 ‘러시아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에 대한 우리 정책의 실패는 러시아 극동정책의 성공을 의미한다. 조선은 두 마리 용 앞에 놓인 여의주와 같았다. 따라서 우리 일본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러시아에 조선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교묘한 역사왜곡,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람은 조선인이다?

고바야카와는 당시 미우라 공사의 지시와 자신들의 음모로 왕비 살해가 자행되었음을 밝히면서도 이 사건의 살해 주범에 대해서는 조선인의 소행인 것처럼 기술함으로써 교묘하게 역사 왜곡과 일본의 책임 회피의 빌미를 만들었다.

“민비의 치명상은 이마 위에 교차된 두 개의 칼자국이었다. 누가 어떻게 죽인 것일까? 양복 입은 조선 사람이 지사들 사이로 섞여 들어와 칼부림을 한 것이란 소문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다음과 같은 기록은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에서도 한 명의 협객(俠客)이 출현해서 우리 지사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전직 군부 협판 이주회(李周會)였다. 이주회는 (중략) 자신이 ‘민비 살해의 주범’이라고 법정에서 자백, 일본 지사들의 무죄를 진술했다. (중략) 이주회는 마침 감옥에서 극형을 선고받았던 2명의 병사를 거짓 지목 “나의 명령을 수행한 하수인”이라고 진술했다. 따라서 세 사람은 극형에 처해졌다. (중략) 아무 것도 모르는 2명의 병사는 대성통곡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표면상이나마 민비를 살해한 사람이 조선 사람이었음이 밝혀졌으므로, 지사들을 살인죄로 처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예심판사가 ‘면소(免訴)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대 원인이었다.”

명성황후 살해의 진범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사건 가담자인 데라사키(寺崎泰吉)의 편지에는 “나카무라 다테오(中村楯雄), 도오 가츠아키, 나(데라사키) 세 사람은 국왕의 제지를 무시하고 왕비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저명한 문인 츠노다 후사코(角田房子)가 쓴 『민비암살』에는 “나카무라 다테오가 왕비의 침전인 곤녕합(坤寧閤)에 숨어있던 명성황후를 발견하여 넘어뜨리고 처음 칼을 대었고, 곧 이어 달려온 도오 가츠아키가 두 번째로 칼을 대어 절명시켰다”고 기술했다. 일본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櫛田神社)에는 도오 가츠아키가 사건 당일 사용한 칼이 보관되어 있다. 칼의 수장(收藏)내역을 기록한 책에는 ‘조선 왕비를 살해한 칼’이라는 기록이 있고, 칼집에는 명성황후 살해사건의 암호명 ‘여우사냥’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다(一瞬電光刺老狐)’란 구절이 새겨 있다.

따라서 ‘살해의 진범’을 조선 사람이라고 주장한 고바야카와의 의도는 분명하다. 을미사변을 대원군의 정변, 훈련대와 궁궐 수비대의 충돌로 축소하고 일본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역사 왜곡인 것이다.

“낭인배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弑害’되었다”는 통념은
“일본의 계획에 의해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로 수정해야 한다.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 우리는 왜 시해(弑害)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시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된 사건이므로 ‘시해’라고 정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살해’ 혹은 ‘암살’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시해사건’이란 단어가 널리 통용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암암리에 ‘조선 사람’이 ‘조선의 왕비’를 살해한 것이란 저의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시해’라는 용어는 ‘조선사람 이주회’가 사건의 진범이라는 고바야카와의 주장을 생각나게 한다.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시해사건이란 말을 유포시켰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성황후 시해’란 용어는 분명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 ‘낭인(浪人)’들의 칼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었다는 인식도 바꿔야 한다. 낭인(浪人)이란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시해 사건의 주모자 미우라 공사를 비롯한 오카모토 류노스케, 아다치 겐조, 이글의 저자 고바야카와 히데오는 모두 고급 지식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일뿐더러, 거의 대부분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사건 종료 후 이들은 모두 승승장구하여 한성신보사 사장이었던 아다치 겐조는 14선 의원으로 체신부 장관,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시바 시로(柴四朗)는 하버드 대학, 펜실베니아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10선 의원을 지냈다. 사세 쿠마테츠(佐瀨熊鐵)는 의사 출신으로 훗날 의원이 되었으며, 당시 영사관보 호리구치 구마이치(掘口九萬一)는 브라질 공사가 되었다. 고바야카와 히데오도 당시 한성신문사의 편집장으로 근무했고, 훗날 규슈지역의 신문사 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단순히 ‘낭인의 칼’에 명성황후가 살해당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 일본정부는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고, 미우라 공사가 단독범행으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란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 가담자들이 당시 일본의 고급 지식인들이고, 그들이 이 사건 후 출세해서 일본 정부의 중요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일본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낭인배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弑害’되었다”는 통념은 “일본의 계획에 의해 일본인이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로 수정해야 한다.

이른바 ‘조선왕비 능욕설’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 책의 부록에 원문의 영인 자료와 전문을 번역하여 수록한 〈에이조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내용이 있다.

“...... 깊숙이 내부로 들어가 왕비를 끌어내어 두 세군데 칼로 상처를 입히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나체로 만들어 국부검사(웃긴다고 해야 할까 화가 난다고 해야 할까)를 했으며, 최후에는 기름을 부어 태워버리는 등, 참으로 이 사건을 글로 쓰는 것조차 차마 못할 일입니다.”

〈에이조 문서〉는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조선정부 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이조(石塚英藏)가 을미사변 다음날인 10월 9일에 일본 정부의 법제국 장관인 스에마츠 가네즈미(末松謙澄)에게 외교라인을 통해 서간(書簡)으로 보고한 최초의 공식문서이다.

〈에이조 문서〉가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964년에 일본 역사학자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가《코리아평론》10월호에 발표한 〈민비사건에 대하여(閔妃事件について)〉라는 논문에 의해서이다. 이 논문은 이후 수정 보완되어 1966년 9월에 도쿄 태평출판사에서 『일본의 한국병합(日本の韓國倂合)』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에이조 문서〉는 한일협정이 체결된 해인 1965년 12월 3일에 일본 국회의 일한조약등특별위원회(日韓條約等特別委員會)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날 일본 공명당 소속의 쿠로야나기 아키라 의원은 당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에게 지난 시기 한일관계의 불평등에 대한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이 문서를 언급했다. 그는 〈에이조 문서〉가 정식 외교문서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일본에 의해 자행된 ‘조선왕비 암살사건’이 조선 독립운동의 시발이 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야마베 겐타로는 일본의 한국병합(日本の韓國倂合)』에서 위의 국부검사 내용을 인용하면서 “폭도들이 사체를 능욕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원로사학자 최문형 교수는 “왕궁 침입에 앞서 이미 술에 만취한 낭인배들이 자기들의 목적을 성취한 뒤 기뻐 날뛰며 이 같은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1)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정운현 기자는 “일국의 왕비가 괴한 무리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능욕을 당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진상이다”라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을미사변’은 비참하고 치욕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서울신문〉, 1998년 12월 21일). 반면에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당시 상황은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아수라장이었다”며 “이는 호기심으로 역사를 윤색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을미사변 발발로부터 114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에이조 문서〉를 무심히 읽어 내려가기가 어렵다. 당시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차마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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