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만일 당신에게 “죽기 전까지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매우 기분 나빠할지 모릅니다. 갑자기 죽음을 들먹거린다는 것이 우리의 정서상 유쾌한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우리가 내일 또는 내년에 무엇을 할 것 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좀 더 현실적인 물음은 “우리는 지금과 죽기 전 사이에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죽음에 관한 책이라고 하여 이 책이 암울한 느낌을 주리라는 생각은 속단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올바로 생각하는 것이 삶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살 아갈 수 있는 비밀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하거나 준비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유입니다. 미리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자세를 가지든지 분명한 것 은 죽음은 우리의 삶 속으로 지금도 찾아오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죽음을 미리 생각하면서 준비할 때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적지를 생각하면서 인생 여정을 살필 때 현재의 인생길을 더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부 죽음과 인생
우리는 죽음을 어디서 배울까요?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점차 핵가족화가 되고 대부분의 장례식을 집이 아닌 병원에서 치르는 현대인들은 점점 죽음을 직접 지켜보는 일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가운데 가족이나 친인척의 임종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매일 같이 죽음을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드가 모랭의 저서 《스타》에 따르면 영화 속 영웅들은 신화적 이미지를 가지고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덧붙여 스타의 반열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해냄으로써 관객들에게 환상을 심어 줍니다. 사랑의 영웅이 있는가 하면 전쟁의 영웅도 있고 스포츠의 영웅도 있습니다. 그중 타인을 죽임으로써 등장하는 영웅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영화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에는 악당으로 묘사되는 ‘거성그룹’의 회장 ‘이원술’정재영이 조폭으로 키우는 고등학생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조폭기업의 핵심 멤버가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거나 조직을 대신해서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가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즉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곧 조직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끝에서 이 학생들의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허무한 것인지가 드러나지만, 그들은 조폭의 실체를 알고 조직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검은 양복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건들거리는 겉모습, 즉 이미지에 속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학생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조폭을 우상시하는 모습은 오락 영화 속에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개인과 사회를 지키는 영웅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988년부터 시작된 〈다이 하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형사의 활약은 테러리스트로 가장한 강도들을 물리치는 것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결국에는 혼자 여러 명의 악당을 죽임으로써 영웅이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이 하드〉에 등장한 영웅은 악에 대한 심판자 역할을 했고, 그 심판의 내용은 철저한 죽음의 응징만이 있었습니다. 미국과 세계를 구하는 영웅의 이미지는 서부 영화의 보안관과 암흑가를 다룬 느와르 영화의 형사 그리고 〈슈퍼맨〉이나 〈배트맨〉, 그리고 〈스파이더맨〉 같은 만화 캐릭터를 통해 이미 보편화된 영상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지 오래되었지만, 블록버스터급의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 안에 나타난 영웅의 특징은 ‘남을 구하기’보다는 ‘악당을 죽이기’ 쪽에 무게 중심이 더 실려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