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은 자신을 완벽하게 감춘 은자이기 때문에 그의 실명이 무엇인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알 길이 없다. 태주 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남긴 ≪한산 시집≫ 서문을 통해 그의 삶을 약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여구윤의 글은 처음부터 다소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그의 글과 한산이 남긴 시를 통해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한산은 출가한 승려가 아니지만 불교에 매우 깊은 조예가 있어 심오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면서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남송(南宋)의 승려 지남(志南)이 ≪한산 시집≫을 발간하면서 한산을 당 태종(太宗) 정관(貞觀) 시대의 인물로 기록함에 따라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불교 서적에서는 그 설을 쫓아서 정관 시대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근래에는 한산 시에 나타난 내용들을 분석해 볼 때 초당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성당(盛唐) 이후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선종 사상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산 시에 나타나는 내용들은 돈오(頓悟)를 주장하는 남종선(南宗禪)이 어느 정도 확립되고 난 뒤의 작품이기 때문에 정관 시기의 작품이 될 수 없다. 특히 시 가운데 ‘애써 벽돌을 갈아본들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은 유명한 마조선사(馬祖禪師)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기에 최소한 성당 이후의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산의 생존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대체로 성당에서 중당(中唐) 사이에 생존했던 인물로 보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편이다.
역자 : 박석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문학 연구를 시작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명상에 입문해 지금까지 명상 수련을 하고 있다. 석사 학위 논문으로 <한산자 선시 연구(寒山子禪詩硏究)>를 씀으로써 한산과 인연을 맺었다. 저서로는 ≪송대의 신유학자들은 문학을 어떻게 보았는가≫, ≪대교약졸?마치 서툰 듯이 보이는 중국문화≫, ≪명상 길라잡이≫, ≪동양사상과 명상≫, ≪하루 5분의 멈춤≫ 등이 있고, 공저로 ≪두보 초기시 역해≫, ≪중국시와 시인?송대 편≫ 등이 있다.
1. <높고 높은 봉우리 꼭대기> 中
샘물에는 마땅히 달이 없으니
달은 스스로 푸른 하늘에 있구나.
이 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니
노래 속에 선이 있지 아니한가?
泉中且無月
月自在?天
吟此一曲歌
歌中不是禪
2. <내 마음 가을 달과 같아>
내 마음 가을 달과 같아
푸른 연못처럼 맑고 희고 깨끗하구나.
감히 비교할 수 있는 물건이 없으니
어떻게 말로 할 수 있나?
吾心似秋月
碧潭?皎潔
無物堪比倫
?我如何說
3. <어젯밤 꿈에 집으로 돌아가니> 中
어젯밤 꿈에 집으로 돌아가니
아내가 베틀에서 베를 짜는 것을 보았네.
북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
북을 올릴 때는 아무런 힘이 없는 듯,
소리쳐 부르니 고개를 돌려 보는데
멍하니 다시 알아보지도 못하는구나.
昨夜夢還家
見婦機中織
駐梭如有思
擎梭似無力
呼之回面視
?復不相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