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작은 소도시에서 딸부잣집의 막내, 여섯째딸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까지 마을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고무신에 올챙이와 송사리를 잡으며 놀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골목길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아파트로 이사를 간 후에는 손바닥에 쇠 냄새가 배는 줄도 모르고 철봉이랑 그네에 매달려 오후 내내 놀았다. 노는 틈틈이 이웃집에서 빌려온 동화책들을 재미나게 읽으며 놀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엔 연극반, 방송부, 합창단 등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은 다 해 보며 놀았다. 낯선 서울에서의 대학 시절엔 북 치고, 장구 치고, 탈춤을 추며 신나게 놀았다. 전공으로 우리 문학을 아주 조금, 곁눈질로 배우며 놀았다. 졸업 후엔 투니버스에서 애니메이션의 더빙 연출을 하고, 유아용 인형극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좀 힘들게 놀았다. 바쁜 회사 생활 중에도 연애를 열심히 해서 눈이 크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둘이서 함께 놀았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하얀 마음 백구’, ‘오세암’ 등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면서 놀았다. 가슴속에서 백구랑 길손이 남매를 키우는 동안 눈이 예쁜 딸아이가 태어나고 자랐고, 셋이서 더 즐겁게 놀았다. 눈이 예쁜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눈이 큰 남자가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서로 더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 오래 전 골목길을 뛰어놀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꼬리는 늘초록늪에서 제일 작은 청개구리였다. 늘초록늪에 사는 개구리들 중에 청개구리가 제일 작으니까, 꼬리는 늘초록늪에서 최고로 작은 개구리인 셈이었다. 그런데 내일은 늘초록늪에서 제일 작은 청개구리인 꼬리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 p.15
엄마는 꼬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눈으로 쓰다듬다가 한 곳에 눈길을 멈추었다. 그곳은 바로 꼬리였다. 꼬리의 꼬리. 꼬리의 엉덩이에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있었다. 아주 조그맣고, 아주 조금 튀어나온 것뿐이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꼬리였다.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자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꼬리의 몸에 남아 있는 올챙이의 흔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p.24
꼬리는 가물가물 흐릿한 기억 속에서 그 수리부엉이란 것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썼다. 하얀 햇빛을 가리던 검은 그림자, 커다란 잎을 펄럭이는 것 같던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소리! 바람보다 먼저 들려오던 소리가 있었다. 멀리서부터 꼬리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던 아득한 소리……. --- p.67
하지만 유명해지는 것과 친구를 많이 사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모두들 꼬리를 알았지만, 어떤 개구리도 꼬리와 놀고 싶어 하진 않았다. 꼬리의 앞에선 모르는 척하다가 꼬리의 등 뒤에서만 꼬리를 쳐다보고 꼬리의 이야기를 수군거렸다. 꼬리가 불길한 개구리라는 것이었다. 수리부엉이가 꼬리를 잡아먹지 않은 건 저주를 받을까 봐 두려워서였고, 꼬리에게 달린 꼬리가 그 증거라고들 했다. --- p.69
“네 꼬리, 귀엽다.” 맹꽁이의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꼬리는 누군가 꼬리에게 직접, 꼬리에 대해서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뒤에서 꼬리를 흘끔거리며 수군대던 개구리들도 정작 꼬리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것도 못 봤다는 듯이. 엄마도 꼬리의 꼬리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긴 했지만 한 번도 말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 p.76
꼬리는 꼼짝 않고 한자리에 앉아서 쉴 새 없이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꼬리가 눈을 계속 깜빡이는 건 눈에 티끌이 들어가서도 아니고, 마음이 불안해서도 아니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꼬리의 두 눈알이 머릿속의 두개골 틈으로 깊이 들어가 꼬마잠자리를 으스러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눈을 깜빡이면서도 꼬리는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꼬리는 꼬마잠자리가 꿈꾸었던 어른 잠자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새빨간 몸통과 투명한 날개를 가진 어른 꼬마잠자리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렸다. 그리고 마음속의 꼬마잠자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때까지, 꼬리는 눈을 깜빡이고 또 깜빡였다. 맹꽁이는 그런 꼬리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마음속 꼬리에게만 조용히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