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경북 청송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고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X파일』『프로방스에서의 일 년』『모네』등이 있다.
저자 : 안 디스텔
파리 오르세 미술관 선임 큐레이터로서 인상파 그림 전문가이다. 여러 전시회의 주최 및 카탈로그 작업에 참여한 바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인상주의 백년제전> <피사로> <모네에 경의를 표함> <르누아르> <쇠라> 등이 있다. 저서로는『인상주의 : 최초의 수집가들』이 있다.
르누아르와 모네의 유대는 점점 깊어갔다. 1869년 르누아르는 돈을 절약하며 파리 서쪽의 작은 마을인 부아쟁루브시엔에서 양친과 함께 검소하게 살고 있었다. 모네가 사는 부지발 근처였다. 당시 모네는 금전상의 문제로 고투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르누아르는 바지유에게 이렇게 썼다. "우린 매일 먹진 않아. 하지만 난 늘 행복하다네. 모네는 좋은 그림 동료거든." 그리곤 애석한 마음을 덧붙였다. "물감이 다 떨어져 난 작업을 거의 못하고 있다네."
말년에 르누아르는 젊은 화가 친구인 알베르 앙드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이때 그가 시작에 불과했던 그 고난의 시절을 떠올렸으리란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결코 투사적 기질이 없어서 내 좋은 친구 모네가 없었다면 수없이 포기했을 것이다. 그는 투사적 기질을 갖고 있어서 나를 밀어주었다."
--- pp.31-32
뒤랑 뤼엘이나 볼라르, 베르냉 죈과 국적도 다양한 그들의 고객들 덕분에 르누아르는 1900년대 이전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비록 초창기 시절의 후원자며 친구들을 하나 둘씩 잃은 아픔을 겪긴 했지만 그들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이 분산되면서 오히려 상업적 가치는 더 높아져, 드가나 모네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가격에 팔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