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구조주의와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가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을 때 정말 저자는 죽은 것이었을까? ‘저자의 죽음’이라는 언술에서의 저자는 혹시 저자의 “가짜 시신”이 아니었을까? 최근 일련의 새로운 시각과 경향은 저자가 죽었다는 언술 자체를 폐기하고 그 대신 저자를 다시 복권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부활’이 다시금 새로운 현재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에서 생성된 ‘저자’ 개념은 더 이상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의 표적이 아니라 디지털 매체 시대,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 자신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며 새롭게 이해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근대적 의미에서의 저자 개념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한다.
문학이론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저자 개념은 분명 서구 근대의 사회적 산물로서 정치, 경제 및 문화예술에 의해 복합적으로 산출된 근본개념이다. 근대 이전에는 적어도 근대적 성격의 저자란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가 주체 철학의 정립이라고 할 때 저자의 출현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저자라는 근대적 관념은 어디에서 어떻게 기인하고 생성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이미 그 어떤 개념적 특성을 전제한다. 즉 전통 속에서 기능해온 필자(Scriptor)라는 개념 및 의미와 다르게 저자(author)라는 용어가 표현되는 순간 어떤 의미가 동시에 지시된다. 그 개념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전적인 권리를 지녔다는 점을 반영하면서, 일반적으로 독창성을 지닌 작품을 창작하는 창조자를 지시하고 있다. 저자는 실제로 필자 또는 전달자 같은 특정한 용어처럼 단순히 어떤 행위를 드러내는 데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의 근본 성격은 창작행위에 관한 결정적인 원천과 근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저자는 창작할 수 있는 영감, 천재성 또는 저작 의도성, 자기 확신이나 서술과 같은 주체적 특성 그리고 법적 저작권 등을 관통하는 ‘권위(authority)’의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작품을 고유하게 표현해낸 ‘도덕적’ 권리자로서 또는 모든 해석들이 귀결되어야 할 원래의 의도자로서, 특히 문학의 영역에서 차지하는 저자의 특별한 위상이 그 점을 잘 드러내 준다.
그런데 이러한 권리와 지위를 포괄하는 저자의 의미는 정치, 경제 및 사회 문화적 계기들을 통해 구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사회적 측면에서 저자의 역할은 인쇄 문화의 확산을 통해 부각된다. 인쇄술의 발명 이후에 물론 저자의 역할은 전통적 통념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 문학비평가인 에른스트 쿠르티우스(Curtius)의 견해에 따르면 M. McLuhan, [구텐베르크 은하계(The Gutenberg Galaxy)], 임상원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p. 360에서 재인용.
급진적 변동이 인쇄술에 의해 초래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분열이라는 사회구조와 관련해 일어났다. 인쇄된 문자는 점차 저자와 독자, 제작자와 소비자를 분리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결국 인쇄는 문자를 통한 말의 사적인 소유라는 새로운 감각을 가능케 하였다. 저자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러한 사적 소유의 현상은 경제와 정치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저자를 배태한 인쇄문화는 대량복제를 통해 인쇄물의 경제적 가치를 증가시켰다. 그것은 문학적 저작물이 시장에서 소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성의 주목은 저작과 판매를 긴밀히 연결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자가 처음부터 실질적인 권한을 얻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작과 판매의 권리를 독점하려는 출판업자 또는 인쇄업자들의 의도에서 전개된 저작권 논쟁을 통해 원래적(original) 소유자라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적어도 18세기 초까지는 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일종의 수사적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적어도 물리적으로 분리되고 고정된 텍스트가 인쇄를 통해 출판됨으로써 지적 재산권의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결국에 이러한 권리의 분쟁을 통해서 작가의 작가성이 인정받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저자의 보호’라는 명목하에 인쇄업자, 출판업자 같은 문화산업의 이익 집단이 점차 강력하게 자신의 경제적 자산을 넓혀가게 되는 경향은 근대의 부정적인 측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치적 측면에서 인쇄문화는 근대인들에게 개인주의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즉 근대인들은 전통적 규범과 공동체 의식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자신들을 자각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인쇄 매체에 의한 의사소통의 변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인쇄 매체로 인해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초래하는 간접적인 소통체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독자적인 세계관을 지닌 개인으로 파악하려는 의식이 형성되었다. 롤랑 바르트도 저자가 이러한 개인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는데, 그에 따르면 저자란 “중세를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개인을,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인간 개성(personne humaine)의 특권적 지위를 발견해감에 따라 만들어진 근대적 인물” R. Barthes, “La mort de l’auteur”, Le bruissement de la langue (Paris: Seuil, 1984), pp. 61~62. 롤랑 바르트,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 김희영 옮김, 서울, 동문선, 1997.
이다. 이처럼 근대적 의미의 저자와 작품 개념은 도서시장의 확대, 독자에 의한 구매방식의 등장,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친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의 확산과 더불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정신적 대상물로 소유 개념이 전이되면서, 저자와 관련한 독창성의 개념이 주목되었다. 그것은 개인 소유의 근거가 되는 로크의 자연권 사상에 의해 확보된 것이다. 로크의 이론을 지적 창작물에 적용하기 위해 에드워드 영(E. Young)은 저자의 독창성을 도입하였다. 저자의 저작 활동이 마치 물질적 생산처럼 인정되고 그 지적 가치가 물질적 재산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공유된 진리를 담아서가 아니라 남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글쓰기 방식이 유효했다. 문화적 차원에서 이러한 독창성은 작품에 대한 사적 소유권자로서의 저자의 의미를 완결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구성요소들에 의해 부각되었던 저자의 본질은 다양한 철학적 관점에 의해 근본적으로 확증된다. 저자의 근본적 의미는 이미 심층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근대의 시대정신에 의해 규정된 것인데, 여기에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대상(obiectum)으로 정립하는 근대적 주체(subiectum)를 핵심원리로 삼고 있는 정신적 패러다임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저자 개념의 배후에는 근대의 주체성의 형이상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적 주체의 성격과 관련해, 저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독점적 지위와 배타적 권리를 가지는 독창적 창조자로서 철학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이처럼 저자-작품(텍스트)-독자의 삼각관계에서 저자는 최종 심급 기관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그와 같은 최종 심급 기관으로서의 저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구조주의 및 후기구조주의(혹은 탈근대성)에 의해 이미 심판을 받은 바 있다. 가령 개개의 글은 다른 글의 영향하에서만 생산될 수 있기에 처음부터 독창적인 글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텍스트는 “인용문의 모자이크”이자 “다른 텍스트의 흡수이며 변형” J. Kristeva: Bachtin, das Wort, der Dialog und der Roman. In: Jens Ihwe (Hrsg.): Literatur-wissenschaft und Linguistik. Ergebnisse und Perspektiven III, Frankfurt/M. 1972, pp. 345~375.
이라는 테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60년대 이후 바르트, 크리스테바가 제시한 상호텍스트 이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저자성(Authorship)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후기구조주의 이론과 비슷한 맥락에서 저자의 자명한 의미를 부정하는 시각은 간헐적이지만 근대 자체 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19세기 초반 독일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은 흡사 짜깁기처럼 보이는 패러디(Parody) 방식으로 자신의 소설을 발표하였으며, 19세기 중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로트레아몽(Lautreamont)은 표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단적으로 전복하면서 자신의 글과 다른 글 간의 상호텍스트적인 관계를 이미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표절은 필연적이다. 표절은 발전에 포함되어 있다. 표절은 어떤 저자의 문장과 직접 부딪히는 것이며, 그 저자의 표현을 이용하고, 잘못된 이념을 쓸어버리거나, 그 이념을 올바른 이념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Comte de Lautreamont: Das Gesamtwerk, Aus dem Franzosischen und mit einem Nachwort von Re Soupault, Reinbeck 1996, p. 282.
그러나 바르트와 푸코에 의해 죽음이 선언되고, 크리스테바, 데리다 등의 후기구조주의적 (상호)텍스트 이론에 의해 해체되었던 저자는 특정 작품 내지는 텍스트가 호명되는 순간 마치 좀비(Zombie)처럼 문화적 영역 내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작품을 읽고 가르치는 강단에서 저자는 여전히 옛날의 권위를 유지하며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가령 ‘어떻게 저자는 그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 작품에는 저자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했을까?’ 같은 언술 행위 모두는 바로 저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 즉 저자-작품(텍스트)-독자의 삼각관계에서 저자는 여전히 최종 심급 기관의 위상을 잃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런 저자의 정당성이 단순히 일상과 관습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기술적 매체 사회라는 동시대의 환경 변화 속에서 저자가 오히려 강렬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간접증거로는 비교적 최근에 독일에서 나온 단행본 [저자의 귀환] F. Jannidis?/G. Lauer/M. Martinez/S. Winko(Hrsg.): Ruckkehr des Autors. Zur Erneuerung eines umstrittenen Begriffs, Tubingen 1999.
, [저자성. 입장과 수정] H. Detering(Hrsg.): Autorschaft. Positionen und Revisionen, Stuttgart/Weimar 2002.
과 이 논문집에 실린 ?이중적인 저자성?, ?가짜 시신의 복귀??, ?저작의 죽음을 묻어버리자? 같은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글 모두 저자의 위상과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으며, ?저자의 죽음 이후의 저자성? G. Schiesser: Autorschaft nach dem Tod des Autors. Barthes und Foucault revisited. In: Hans Peter Schwarz(Hrsg.): Autorschaft in den Kunsten. Konzepte?Praktiken?Medien, Zurich 2007, pp. 20~33.
이라는 논문 제목은 저자에 대한 우리 시대의 역설적인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는 셈이다.
저자의 복귀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매우 현실적, 사회적 차원에서 2009년에 저자/저작권과 관련된 획기적인 두 가지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그 하나는 2009년 3월에 발표된 소위 “하이델베르크 호소문(Heidelberger Appell)” http://www.textkritik.de/urheberrecht/
이다. 이 호소문은 구글도서검색 플랫폼과 오픈 액서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자문서의 출현을 겨냥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야기되는 온갖 부정적인 현상들, 가령 수많은 저자의 등장, 불법적인 정보 이용, 불법 업/다운로드, 무단 복사 등을 비판하는 동시에 저자의 인격권과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호소문”이 저자 자체의 이익보다는 실제로는 출판사의 경제적 목적을 꾀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또한 출판사의 이익을 위한 저작권 보호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저자를 중시한 해석학적 시각을 지닌 학자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같은 해에 “하이델베르크 호소문”과 정반대 차원에서 충격적인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럽의 현실 정당정치 차원에서 “해적당(the pirate party)”의 출현이다. “해적”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반어적인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면서 인터넷 사용자를 중심으로 창당된 해적당은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과 저작권의 제한을 핵심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유럽의 각국에서의 해적당은 먼저 2009년 6월 11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스웨덴의 해적당이 7.1%의 득표율로 유럽의회에 대표자를 파견하면서 본격적으로 현실 제도권 정치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해적당의 정치세력화는 점점 가속되어 2011년에는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8.9%를, 올해 3월 자를란트 주의회 선거에서는 7.4%를 획득함으로써 자민당(FDP) 보다도 많은 지지를 이끌어낸다. 또한 5월 6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 선거에서는 8.2% 득표율로, 5월 13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는 7.8%의 득표율로 당당히 주의회에 입성한다. 한마디로 해적당은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놀라운 지지를 과시하는 정당이다. 이처럼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해적당으로 인해 저자/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은 한층 더 가열되어 수많은 심포지엄이 잇달아 개최되고, 각종 비평과 논문과 서적들이 순식간에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서로 대척적인 이해관계 당사자들은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여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고 이에 따라 저자/저작권을 둘러싼 치열한 담론의 전선과 전투에 가담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이론적, 실질적 배경을 토대로 본 연구는 과거의 양자택일적 시각, 즉 저자를 절대적으로 신성시하는 방식이나 혹은 저자의 조종(弔鐘)을 울리는 방식 중 그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저자/저자성의 문제를 통시적이고 공시적으로 접근해봄으로써 저자/저자성 논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 저자/저자성/저작권 문제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이론적 착안점을 비교문학적으로 다양하게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들어가는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