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단편 작가. 남북 전쟁에 북군으로 참전해 많은 전과를 세웠으나 전쟁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을 경험하면서 회의를 품게 되었다. 종전 후『뉴스레터』,『아르고노트』,『와스프』 등 다양한 잡지와 신문에 글을 썼다. 촌철살인의 독설과 풍자적인 사회 비판으로 ‘비터 비어스(신랄한 비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명성을 얻었다. 초자연적인 현상과 공포,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남북 전쟁을 주제로 많은 단편을 써 소설집『군인과 민간인 이야기』(1891),『그런 일이 가능할까?』(1893) 등을 펴냈다. 특히 냉소와 위트가 가득한 풍자 사전인『악마의 사전』(1906)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1913년 남북 전쟁 격전지를 방문한 후 멕시코에서 판초 비야 군대에 합류할 것이라는 편지를 남기고 실종되었다.
역자 : 정탄
홍익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고딕 소설과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으며, 옮긴 책으로『러프크래프트 전집』,『해변에서』,『피의 책』,『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세계 호러 걸작선』등이 있다.
고독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숲 까마귀가 접근하기 쉬운 이 소박한 건물에 ‘실로’ 예배당이라는 기독교식 명칭이 붙었고, 여기서 이번 전투의 명칭도 유래했다. 기독교인에 의해 기독교인이 대량 살육된 현장에 기독교식 명칭이 붙었다는 사실에 대해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은 인류 역사에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났기에, 차라리 덜 빈번했더라면 품었을 도덕적 관심마저 경감시키고 만다. ---「내가 샤일로에서 본 것」 중에서
아이는 기어가는 형체 중 하나를 골라 뒤에서 잽싸게 올라탔다. 그 남자는 땅에 가슴을 처박았고, 다시 상체를 일으키고는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아이를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남자가 아이를 향해 아래턱이 없는 얼굴을 돌렸는데, 윗니부터 목구멍까지 휑하니 벌어진 붉은 틈새에 살점과 부서진 뼛조각들이 너덜거렸다. (…) 무시무시한 무언극을 하듯 무수한 사람들이 깊고 완전한 침묵 속에서 서툰 동작으로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몸을 끌며 경사지를 따라 내려갔다. 마치 커다랗고 시커먼 딱정벌레들이 소리 없이 떼 지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치카마우가」 중에서
암석의 꼭대기로 시선을 옮기던 장교는 충격적인 광경을 보았다. 말을 탄 남자가 계곡 밑으로 똑바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자는 군인처럼 안장에 꼿꼿이 앉아서 너무도 맹렬한 추락의 속도를 줄여 보려는 듯 틀어쥔 고삐를 뒤로 당기고 있었다. 긴 머리칼이 깃털처럼 위로 휘날렸다. 두 손은 말의 솟구친 갈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말발굽이 단단한 땅에 닿아 있기라도 한 듯 말의 몸뚱이는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대단히 빨랐지만, 장교의 눈에는 정지된 장면처럼 보였다. 말의 네 다리는 도약대에서 뛰어내리듯 모두 앞쪽으로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지상이 아니라 허공이었다! ---「창공의 기수」 중에서
“잠에서 깬 건 먼동이 틀 무렵이었습니다. 커튼이 없는 창가에 달빛이 비쳤고, 딱히 이상한 구석은 없는데도 은은하고 푸르스름한 달빛에 드러난 방 안이 어딘지 으스스하더란 말입니다. (…) 그런데 객실 바닥에 못해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발견했으니, 그때 내가 얼마나 놀라고 화가 났겠소! 나는 개념 없는 호텔의 조치에 욕설을 퍼부으며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수지 양초까지 두고 간 직원과 한바탕할 생각으로 침대를 박차고 나갈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을 움직이는 게 내키지 않더란 말입니다. (…) 왜냐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게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