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엉뚱한 비약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코르소는 혼돈에 빠진 채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소설에서 밀레이디의 동료로 나오는 등장 인물이 톨레도에서 차를 몰고 돌진한 미지의 인물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두 인물 사이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얼굴에 흉터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작품의 첫 장에는 그 점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없었지만, 코르소는 소설 작품 속의 인물 역시 얼굴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p.147
영화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관대하잖아.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영화도 좋아. 왜냐하면 두 사람만이 볼 수 있고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당신의 책은 지나치게 이기적이야. 고독해. 책은 둘이 함께 읽을 수 없고, 책을 펼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깨지는 거야. 당신처럼 오로지 책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내가 두려워하는 게 바로 그거야.
--- p.324
'난 선물 따윈 좋아하지 않소.' 그는 무뚝뚝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언젠가 어떤 사람들이 목마를 선물 받았는데, 그 공예품이 아케아 산이었다고 하더군... 얼빠진 인간들 같으니라고.'
'거기서 빠져나온 사람은 없었나요?'
'한 사람, 딱 한 사람이 자식들을 데리고 빠져나왔는데, 바다에서 솟구쳐오른 괴물들은 그 자식들을 멋진 조각가 그룹으로 만들었소. 아마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들이 바로 '로도스 섬 학파'가 되었을 거요. 어쨌든 그때만 해도 신들은 지나치게 편파적이었소.'
--- p.313
'나폴레옹도 블뤼허와 그뤼쉬를 혼동하는 잘못을 저질렀지요. 이렇듯 군사 전략 역시 문학만큼이나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지요. 잘 들으시오. 코로소씨. 당신이 생각하는 순진한 독자는 이제 어디에도 없소. 독자들은 텍스트 앞에서 자신의 교활한 방법으로 그것을 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았던 텔레비젼과 영화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어요. 그리하여 독자는 작가가 제공하는 정보보다 자신의 정보를 첨가하게 되는 건데, 당신은 거기서 실수하고 말았소.'
--- p.510
그때서야 책사냥꾼 코르소는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기 전에 잔인한 늑대처럼 하얀 이를 드러낸채 씨익 웃었다. 하긴 책들이란 이런 종류의 얘깃거리들도 담고 있는것 아닌가. 그는 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기에 각각의 책은 각각의 악마를 갖게 되는 것이고.
---p.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