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릴리(1553/4∼1606)는 1578년에 출간된 그의 첫 산문인 <유피우스: 기지의 해부>와 2년 뒤에 발표한 <유피우스와 영국>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다. 우아하고 화려한 산문체로 유명하다. 유피이즘은 바로 직접적이지 않고 장식적인 그의 문체에서 온 말이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 “발군의 기지(a noted wit)”를 가진 학생으로 알려졌고, 졸업 후에는 옥스퍼드 백작(Earl of Oxford)으로 알려진 에드워드 드 베르(Edward de Vere)의 개인 비서로 일했다. 이후 옥스퍼드 백작은 릴리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로 남는다. 릴리가 쓴 희곡 작품들은 대부분 “폴의 아이들(Children of Paul's)”이라는 아동 극단에 의해, 당시 절대군주였던 엘리자베스 1세가 보는 앞에서 공연되었다. 릴리는 의회(parliament)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끝내 여왕의 궁정에서 눈에 띄는 직책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왕에게 두 번의 탄원서를 썼는데 10여 년간 여왕을 위해 충성을 다했으나 별다른 보상을 얻지 못한 것을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그는 여왕이 죽은 지 3년 뒤인 1606년에 가난한 무명 인사로 죽어 런던에 있는 성 바돌로매(St. Bartholomew-the-less) 성당에 안치되었다.
역자 : 임성균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미국 루이지애나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밀턴학회와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지냈다. 학술 논문 50여 편과 저술(번역 포함) 14권을 발표했으며, 2012년에는 에드먼드 스펜서의 ≪선녀여왕≫을 완역했다.
배우: 한 남자가 여행을 하고 있는데, 바람과 태양이 하나는 강풍이 다른 쪽은 광선이 낫다면서 서로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그 사람은 옷을 제 몸에 더욱 바싹 둘렀다. 바람은 더 세차게 불어 댔다. 그러자 그는 옷을 더욱 꽉 조였다. “내가 이길 수는 없겠군,” 바람이 말했다. 태양은 그녀의 투명한 광선을 내보내 그 남자를 따뜻하게 했다. 그는 외투를 풀었다. 태양은 더 밝게 빛났고, 그러자 그는 외투를 벗어 버렸다. “내가 졌소,” 바람이 말했다. “그대가 쉬지 않고 비추면 저 사람은 자신의 상의도 벗을 거요.” 경외하옵는 주군이시여, 협박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악당들은 우리의 신념을 더욱 굳세게 하고 폭풍 속에서 더욱 강하게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호의의 광채로 우릴 내려 봐 주신다면, 우리는 허리를 굽힐 뿐 아니라 지극한 겸손함으로 손과 마음을 둘 다 전하의 발아래 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