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착각과 환상으로 수많은 전쟁을 해온 미국인이 테러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미국인으로선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니 2001년의 9·11테러에 대해 미국인들이 느꼈을 충격과 공포는 엄청났을 것이다. “미국이 공격받다(U.S. ATTACKED).” 9·11테러 다음날 발행된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의 1면 전단 제목은 이 두 단어였다. 이 신문은 이후 ‘도전받은 나라’라는 부제의 섹션을 따로 만들어 매일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한 전황을 상세히 보도하기 시작했다.(윤국한 2002) 부시는 9·11테러 직후 “우리는 기도를 통해 전능하신 신에게 우리의 슬픔을 감당해달라고 간구한다”고 말했다. 테러 직후 가진 한 기자회견에서 ‘십자군 전쟁(crusade)’이라는 말을 쓴 일은 즉각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팔레스타인 비르제이트대학의 로저 히코크 교수(역사학)는 “무엇이든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는 습성의 중동인들에게 부시 대통령의 ‘십자군’ 발언은 곧바로 7만여 명의 모슬렘이 학살된 1099년의 예루살렘 정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정은령 2003) 미국인들이 9·11테러로 인해 가족애를 더욱 소중히 깨달았는지는 몰라도 나머지 세계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과유불급(|·r)이라고 했던가· 비단 프랑스의 『르몽드』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다수가 9·11테러의 충격에 놀라 “이제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고 기꺼이 외치고자 했지만, 이후 나타난 미국의 대응 방식에 환멸을 느껴 점점 그런 지지를 철회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미국에는 오래전부터 ‘노예 상태의 적’과 ‘자유 상태의 미국’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했지만, 부시는 그 이분법을 종교적인 선악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림으로써 다른 세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